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바다수리-6형) 검수사격 현장을 참관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불법적 유령선”이라며 도발 협박을 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최근 210년간의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확정한 스웨덴의 행보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거듭된 핵전쟁 위협은 작금의 국제정세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앤서니 코튼 미 전략사령관은 며칠 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의 군사밀착으로 (미국이) 다수의 핵무장 국가와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포스트 워(post-war·전후)를 벗어나 프리 워(pre-war·전전)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올해 초 그랜트 섑스 영국 국방장관의 진단이 심각하게 와닿는다. 섑스 장관은 러시아와 이란, 중국과 함께 북한을 향후 5년 내 분쟁 예상지역으로 콕 찍었다. 새로운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살얼음판 같은 정세를 직시하고 대비하라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북한 김정은은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적개심 고취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핵 공격을 불사하고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사일 도발과 핵무력 고도화에 몰두하고 있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전쟁 결심을 했다고 주장하고, 러시아 외교 당국자까지 나서 “한반도의 직접 군사 충돌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경고하면서 ‘한반도 위기설’까지 부상하고 있다.
지나친 위기 증폭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방심은 더더욱 금물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전쟁 결행의 ‘의지’와 ‘능력’ 측면에서 김정은의 협박을 ‘말 폭탄’으로만 넘겨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대남 적화 의지를 노골화하고, 이를 도발로 현시한 게 다반사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도발이 그 증거다.
2017년 8월 김 위원장은 백령도와 연평도에 대한 대량 포격과 특작부대의 대규모 기습 점령 훈련을 참관한 뒤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여전히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능력’은 더 확연하고 노골적이다. 6차례의 핵실험과 다량의 핵물질 생산, 핵탄두를 어디서든 투발할 수 있는 미사일 시험발사 등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 무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협박과 핵 무력 증강을 자위용이자 대미 협상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하지만 한미가 북한을 먼저 공격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은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3대에 걸쳐 경제를 망가뜨려 가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에 ‘올인(다걸기)’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탄압하고,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남적화의 결정적 시기를 노려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전역과 미 본토를 동시에 때릴 수 있는 핵 무력을 달성했다고 자만한 김정은이 위험한 오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북도서를 기습 강점한 후 핵 사용을 위협하거나 최전방 지역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대규모 국지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무력을 앞세운 속전속결식 서울 점령 시나리오를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여러 차례 김정은이 한국 지도를 펼쳐 놓고, 핵 공격 훈련을 실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올해 고강도 도발과 예측불허의 무력시위로 확장억제(핵우산) 등 미국의 방위 공약과 우리 군의 대비태세, 우리 국민의 대응역량을 최대한 흔들려고 할 것이다. 재집권 가능성이 커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동맹 경시, 북한·중국·러시아의 전방위적 밀착, 한국 사회의 극심한 이념과 진영 갈등을 김정은이 호재로 판단할 공산도 크다. 한 치의 허점이나 빈틈도 보이지 않도록 경계의 고삐를 다잡아야 할 때다. ‘프리 워’ 위기의 최전선이 한반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려선 안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