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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획정 상습 지연, 법 고쳐 악순환 끊자[동아시론/이준한]

입력 | 2024-03-04 23:45:00

획정 지연되면 현역 유리하고 신인 불리
시한 한 달 전엔 의장이 의원정수 정해야
여야가 미적대면 획정위 원안으로 확정을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월 29일에야 국회에서 2024년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원래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국회의 수정 요구와 이유가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전달되고(제24조의2 제3항) 다시 획정위원회가 10일 안에 새로운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제4항)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제6항)해야 하는데 이 절차도 생략되었다. 지난해 12월 5일 획정안이 늦게나마 국회에 제출된 뒤 여야의 갈등으로 표류하다가 시간에 쫓긴 결과이다.

이로써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처음 설치된 1996년 총선 이후 단 한 번도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시한이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 공직선거법 제24조를 보면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일 전 18개월부터”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설치하고(제1항), “선거구획정안과 그 이유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선거일 전 13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제11항)하여야 한다. 그러면 같은 법 제24조의 2에 의해 국회가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제1항). 2004년 총선 때는 D-34일, 2012년 총선은 D-42일, 2016년 총선은 D-41일, 2020년 총선은 D-35일에야 획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2024년에는 D-39일에 마무리된 것이다.

획정이 매번 늦어지는 이유는 첫째, 국회가 총선 때만 되면 항상 선거제도를 바꾸고 의원정수를 바꾸려 들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을 하려면 우선 지역구 의원정수가 나와야 한다. 지역구 의원정수가 안 정해지면 선거구를 몇 개 그려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정수는 또 비례대표 선거제도 및 의원정수와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획정은 선거제도까지 정해지지 않으면 마무리되기 어렵다. 이번에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2020년과 같은 지역구 의원정수(253명)로 획정하라고 기준을 정해주었기 때문에 12월 5일에 획정안이 나왔다. 혹자는 획정이 늦어지는 이유가 획정위원회가 정당의 추천을 받아 구성되어 서로 정당의 대리인같이 싸우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둘째,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가 없다. 국회에서 획정과 관련된 시한을 공직선거법에 규정해 놓았어도 이를 어기고 정쟁으로 날을 세워도 그만인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제1항(“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을 어겨도 처벌하는 규정은 그 어디에도 없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나 원내대표 또는 당 대표 등 그 누구도 획정이 늦어진 데 대한 정치적 책임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셋째, 선거구 획정은 현역 의원에게 우선순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현역 의원들은 매번 국회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비례대표 의원정수를 늘리네 마네 또는 선거제도를 바꾸네 마네 하면서 시간을 끌어왔다. 일단 국회가 이 수렁에 빠지면 안 그래도 국회의 시간이 극단적인 정쟁으로 흐르는데 획정은 더 뒤로 밀리게 된다. 획정이 늦어지면 현역은 손해가 적지만 도전자는 어느 지역이 자신의 선거구인지조차 몰라서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다. 유권자는 자신의 후보나 선거구도 모르는 혼란 속에 선거를 맞이하게 된다. 그사이 획정이 늦어지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첫째, 선거구 획정에 있어서 가장 선행 요소인 의원정수를 고정시키고 선거제도도 수시로 고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김 의장이 시도했듯이 일단 지역구 의원정수를 현행대로 기준 삼아 시한이 되면 획정위원회가 획정안을 제출하도록 관례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획정안 확정시한 1개월 전에는 국회의장이 의원정수 등 획정 기준을 정해주도록 공직선거법을 고치는 것이 더 확실하다.

둘째, 공직선거법의 획정 시한을 현실성 있게 줄이는 것도 대안이다. 이미 김 의장이 주장했듯이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제1항에서 1년을 6개월 전까지로 바꾸는 것이 좋다. 나아가 만약 국회가 획정을 하지 않으면 획정위원회의 원안이 자동적으로 6개월 전에는 확정되도록 조문화해야 한다.

셋째, 획정위원회의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획정위원회로 파견되는 사무국 직원은 반복해서 일하다 보니 획정에 대한 전문성이 매우 뛰어나지만 획정위원은 매번 바뀌어 초보자로 출발한다. 아무리 선거를 전공하는 교수나 법조인이라도 획정은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실무자와 획정위원 사이의 정보나 경험의 불균형이 크면 위원이 끌려다니거나 놓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만약 획정 시한도 줄이고 원안을 자동적으로 통과시키게 만든다면 획정안의 완성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획정위원도 일정 정도 연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