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분야 인재 부족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국내 대기업 직원이 거짓 사유를 대고 퇴사한 뒤 해외 경쟁사로 이직해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원이 나간 기업은 경쟁사에 이직한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알고 소송을 내도 늘어지는 재판 절차 등의 이유로 인재 유출을 차단하는 효과는 없다고 한다.
삼성전자에서 5세대(5G) 이동통신용 반도체 개발팀을 이끌던 A 씨는 재작년 9월 육아를 이유로 퇴사하고 나흘 만에 경쟁업체인 미국 퀄컴으로 이직했다. 이 사실을 6개월 뒤 알게 된 삼성전자는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에서 이직 금지 결정이 나온 건 그로부터 8개월이나 지나서다.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팀장이던 B 씨는 작년 5월 퇴사하면서 “협력업체에 이직한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경쟁업체인 중국 TCL로 옮겼다. LG디스플레이는 소송을 냈지만 퇴사 후 7개월 뒤에야 이직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임직원이 거짓말을 하고 해외 경쟁사로 옮겨도 회사가 확인하기 어렵고, 기업이 이직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도 가처분 신청 외엔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법원이 기술적 문제가 얽힌 가처분 신청을 처리하는 데에 길게는 1년 넘게 걸린다. 회사가 승소해도 법원이 내리는 전직 제한 기간이 1, 2년에 불과해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한다.
반면 대만이 자국 반도체 기술자의 중국 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등 한국의 경쟁국들은 핵심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장벽을 세우고 있다. 우리도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해 유출을 차단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미 많은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첨단산업 기술력을 지켜내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