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는 콘텐츠]〈2〉 ‘살인자ㅇ난감’ 원작 비교 웹툰 원작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귀여운 2등신 캐릭터 만화와 달리 살인자-피해자 리얼리티 살려 표현 사실적인 각색으로 설득력 높여… 韓-태국 등 10개국서 시청수 1위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이탕이 등장한 ‘살인자ㅇ난감’ 웹툰(위쪽)과 드라마의 한 장면. 웹툰에선 이탕이 귀여운 2등신 만화 캐릭터로 나오지만, 드라마에선 배우 최우식이 연기한다. 네이버웹툰·넷플릭스 화면 캡처
드라마는 만화보다 더 높은 ‘리얼리티’(현실성)를 필요로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의 원작 웹툰에선 살인의 의도를 담담히 전하기 위해 귀여운 2등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선 해당 캐릭터들이 멍한 눈빛과 사연을 지닌 듯한 표정을 짓는 인물들로 재창조됐다. 웹툰은 느슨한 컷 속에서 살인자 ‘이탕’(최우식)의 감정을 조용히 따라가지만, 드라마는 이탕에게 살해당하는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와 그를 쫓는 형사들의 발소리를 생생히 담으며 리얼리티를 더한다. 지난달 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한국,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10개국에서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1위에 오른 비결이다.
원작은 이질감으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악인을 죽이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라는 심오한 주제의식을 귀여운 그림체의 2등신 캐릭터에 담아 2011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실사화를 택해 현실감을 높였다.
극에선 시청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도록 살인 장면을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이탕이 공원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를 밀어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직감에만 의존해 여자를 악인으로 추정해 살인한 것. 드라마에선 이 에피소드가 삭제됐다. 여자가 영유아 살해범임이 나중에 드러나지만, 이탕이 불가피하게 살인에 연루되는 서사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실적인 각색을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며 “팬들은 원작이 조금만 다쳐도 크게 아파하곤 한다. 하지만 연출자는 냉정한 외과의사처럼 차갑게 메스를 들이대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원작은 이탕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자기정당화 등 복잡한 내적 갈등에 집중한다. 예컨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7년)을 언급하며 단죄에 무게감을 더한다. 꼬마비 작가는 “심리 묘사에 공을 들인 건 독자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납득이 돼야 했기 때문”이라며 “(살인에 대한 고민이 없는) 황당무계한 심리 변화로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다. 이탕이 첫 살인을 하고 마주하는 환상, 상상, 독백은 고민의 결과”라고 했다. 이에 비해 드라마에선 이탕의 자기 고뇌 대신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추적 내용을 늘렸다. 이 감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장난감의 원칙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주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극에선 청년 문제에 대한 고민도 담겼다. 원작은 이탕의 살인을 첫 장면으로 내세운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목적 없는 삶으로 방황하는 대학생 이탕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원작이 연재된 2010∼2011년에 비해 한층 팍팍해진 청년들의 삶을 구현한 것. 특히 원작에서 이탕은 경품 당첨된 벽시계를 걸기 위해 편의점 사장에게 살인 도구인 망치를 빌리지만, 극에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꿈꾸며 구입한 로키산맥 액자를 벽에 걸기 위해 망치를 빌린다. 이 감독은 “로키산맥에는 요새 젊은이들의 상실감에 더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욕구를 반영했다. 로키산맥은 이탕에게 도달하지 못한 이상향으로 살인 후 점점 멀어져 간다”고 했다. 극에서 이탕이 첫 살인을 저지른 후 로키산맥 액자를 버리고 쓸쓸히 걸어가는 장면은 꿈의 좌절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원작과 달리 빠르게 여러 장면을 중첩시킨 드라마 연출도 돋보인다. 이탕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폭행당하는 장면을 과거 고교 시절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장면과 겹쳐 보여주며 이야기를 빠르게 펼쳐낸다. 원작에선 직감과 우연에 의존한 살인자였던 이탕이 드라마에선 악한을 적극적으로 심판하는 ‘다크 히어로’로 묘사되는 점도 특징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가 ‘다크 히어로’ 장르라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없다. 어쩌면 장르라는 건 관객분들이 정해주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