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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보다 뜨겁다…튀르키예 주식시장에 무슨 일[딥다이브]

입력 | 2024-03-06 10:00:00


올해 들어 주가지수가 20% 뛰며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핫한 주식시장은 어디일까요. 아마 많은 분이 일본을 떠올릴 텐데요. 일본 말고 여기도 있습니다. 바로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경제 상황이 썩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죠. 오히려 67%에 달하는 인플레이션과 사상 최저로 떨어진 통화가치, 극과 극 통화정책까지. 혼란이 상당한데요. 그럼에도 튀르키예 증시가 3년째 급등세를 이어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오늘은 뜨거운 튀르키예 증시를 들여다봅니다.

일본 말고 여기도 증시 활황이다. 지난달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 기록 경신한 튀르키예.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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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보다 낫다? 튀르키예 기술주
‘엔비디아는 잊어라. 튀르키예 기술주는 두배로 올랐다.’
며칠 전 튀르키예 현지 언론의 기사 제목입니다. 튀르키예의 대표지수인 ‘보르사 이스탄불(BIST) 100’은 지난달 9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죠.

이 지수 상승세를 이끈 건 단연 기술주입니다. IT 관련주만 묶은 BIST 정보기술 지수는 올해 들어 두 달여 만에 93% 뛰었습니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기업 MIA테크놀로지 같은 종목은 같은 기간 주가가 104% 올랐죠. 미국 엔비디아 주가가 올해 들어 70% 올랐는데, 그보다도 수익률 면에서 앞섭니다.

BIST정보기술지수의 흐름. 올해 들어서만 90% 넘게 뛰며 전체 튀르키예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 인베스팅닷컴

혹시 튀르키예 기술주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요? 사실 인공지능(AI)과 관련한 특별한 호재 거리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무섭게 뛴 종목들도 대부분 고만고만한 중·소형주들이고요. 그런데 왜 이 난리인지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답은 이렇습니다. 개인과 기관, 외국인 투자자까지 다들 튀르키예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서 안달났기 때문입니다. 신흥시장 전문 펀드매니저인 엔레 아카크마크는 FT 인터뷰에서 튀르키예 증시의 뜨거운 투자 열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이고, 좋은 소식도 좋은 소식입니다.”


67% 초인플레이션과 주식 투자
일단 튀르키예 현지 투자자, 특히 개미들 입장에서 한번 볼까요. 튀르키예 개인투자자라면 주식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주식시장이 빠르게 우상향하며 260% 넘게 지수가 올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인플레이션 탓에 아무 투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돈이 증발해 버릴 판이기 때문이죠.

2월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67.07%. 한때 85%(2022년 10월)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이 좀 잡히나 싶더니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뛰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추이. 2022년 10월 정점을 찍고 떨어졌던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오름세다. 튀르키예 통계연구소

물가가 뛰는데 금리가 낮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앉아서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죠. 은행예금은 당장 깨고 수익률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게 살길입니다. ‘내 돈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 그게 바로 2021년 말부터 튀르키예 개미투자자들을 움직인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죠. 어느 정도냐면 기존에 8.5%였던 기준금리가 총 7차례에 걸친 인상으로 올 1월엔 45%가 됐습니다. 물가를 잡겠다며 중앙은행이 통화긴축 정공법을 쓴 겁니다.

최근 3년의 튀르키예 기준금리의 추이. 2021년 10월부터 금리를 내려오다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인 2023년 6월부터 다시 가파르게 금리를 올렸다.

주식투자자분들은 경험으로 알겠지만, 대체로 ‘금리 인상=주식시장엔 악재’입니다. 금리가 뛰면 예금과 채권의 투자 매력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으로는 돈이 덜 몰리게 되죠. 그래서 일반적인 공식대로라면 증시 열기가 좀 식어가야 할 텐데, 웬걸. 금리를 올리기 전의 두배 수준으로 주가지수가 뛰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이 호재?
금리인상이 왜 튀르키예 증시에선 호재로 작용하는지를 알려면, 이 나라 통화정책 스토리를 좀 알아야 합니다. 지난 2년여간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갔는데요.

“고금리는 모든 죄악의 부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전에 했던 말이죠. 2021년 말 터키 정부는 신경제 모델을 선포하고 독특한 경제실험을 합니다. ‘물가 상승의 원인이 금리’라며 금리 인하에 나선 건데요. 금리를 내리면 물가도 떨어지고 경상수지도 흑자가 될 거란 논리를 펼쳤죠. 좀 이상하다고요? 네, 물론 경제학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19%였던 기준금리를 2023년 2월까지 8.5%로 뚝 떨어뜨려 버립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고금리를 죄악시하며 ‘나홀로 저금리’ 정책을 펼쳐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장본인이다. AP 뉴시스

그래서 결과는? 당연히 물가는 치솟았죠. 살인적으로 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서민들이 집에서 쫓겨날 지경이 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 간 칼부림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개입을 하면서 외환보유액은 대폭 쪼그라들었죠. 경상수지 적자는 신기록을 경신했고요.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튀르키예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놀랍게도 연임에 성공했죠. 그리고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경제 정책을 유턴해버립니다.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 CEO 출신인 하피제 게이 에르칸을 중앙은행 총재로 영입한 게 대표적이죠. 에르칸 총재는 취임하자마자인 지난해 6월 8.5%인 기준금리를 15%로 올리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전 세계에 알립니다.

그리고 연이어 기준금리를 팍팍 올리며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섰는데요. 그러자 해외 투자자들이 튀르키예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①리라화 통화가치가 역사적으로 바닥인 데다(=앞으로 리라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 큼), ②다른 신흥국 주식과 비교하면 아직 주가가 저렴하다(=12개월 선행 PER 신흥시장 평균 12배, 튀르키예 4배)는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게다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드디어 각성해서 경제정책까지 멀쩡해졌으니? ‘이제는 좀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투자를 좀 해도 되겠네’라고 시각이 바뀝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투자자의 튀르키예 주식 순매수 행렬이 시작됐고요. 올해 들어서도 두 달 동안 주식 1억1540만 달러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그동안 증시에서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외국인 시총 보유 비중 2021년 말 40.5%→2023년 5월 27.4%→2023년 12월 38%).

외국인의 귀환은 당연히 증시엔 큰 호재인데요. A1캐피탈의 유제이어 도안 부사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습니다. “BIST 지수가 과도하게 할인된 상태인데다, 환율 흐름이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최근의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상승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1만 포인트가 심리적으로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첫 번째 목표라고 봅니다.”

이스탄불 시장의 모습. 게티이미지



개미들의 식지 않는 공모주 사랑
외국인 귀환 전까지 증시를 떠받쳐온 튀르키예 개미들의 투자 열기도 여전합니다. 튀르키예 중앙등록청이 최근 발표한 주식 투자자 수는 823만명(주식 잔고가 있는 사람 기준). 1년 전(425만명)과 비교하면 두배 수준입니다. 개인투자자 수는 지난해 말 살짝 줄어드는 듯하다 2월 들어 다시 크게 늘었는데요.

금리가 올랐다곤 하지만(주요 은행 예금금리는 42.5~47% 수준), 물가상승률(2월 67%)보단 아직 한참 낮죠. 그러니 여전히 주식이 매력적이고요.

무엇보다 개미들의 ‘공모주 대박’을 향한 기대감이 투자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IPO 열광자들이 2월 들어 주식시장으로 돌아왔다’는 게 현지 언론 분석인데요.

2020년 국내 주식시장에서 ‘따상(공모가 두배 시초가+상한가)’ 대박이 이어지면서 공모주 열풍이 불었던 것 기억하시죠. 지난해 튀르키예 증시가 딱 그 분위기였습니다. ‘공모주의 마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단 상장하면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찍으며 급등하는 종목이 줄이어 나왔는데요. 변압기 제조사 애스터 에네르시(ASTOR) 주가는 공모가(12.37리라)의 약 10배, 농업회사 타르킴 플랜트 프로텍션(TARKM)는 공모가(107.5리라)의 약 7배 정도로 뛰었습니다. 튀르키예 중앙등록청에 따르면 지난해 IPO에 참여한 누적 투자자 수가 약 1억 명에 달합니다(참고로 튀르키예 인구는 약 8500만명).

요즘 튀르키예 개인 투자자들 분위기가 딱 이렇다고. 게티이미지

공모주 마법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상장된 설탕 제조사 보르스크(BORSK) 주가는 공모가의 약 90%, 시멘트제조사인 리막 동부 아나톨리아 시멘트(LMKDC)는 100% 넘게 주가가 올랐으니까요. 대박 내지 한탕을 노린 초보 개미들이 여전히 계속 신규 유입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쯤 되니 걱정의 목소리도 이어집니다. 공모주를 노리는 개인들은 증권신고서조차 보지 않고 뭘 하는지도 모르는 기업에 투자하곤 하죠. 외국인 투자자가 주로 투자하는 지수에서 가중치가 높은 대형 우량주와는 거리가 먼데요. 현지 언론은 공모주 투자자가 “대부분 젊고 야심이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라며 이들에게 “게임하듯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참 익숙한 얘기입니다.


주가지수 1만 포인트 찍나
여기까지만 보면 튀르키예 주가지수가 2년 반 전 2000포인트에서 9000포인트까지 뛴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망일 텐데요.

튀르키예의 투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낙관적입니다. 올해 들어 지수가 워낙 빠르게 올라 일시적으론 차익 매도가 나올 순 있지만, 증시엔 호재가 남아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①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CDS프리미엄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②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조만간 국가신용등급을 올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하죠. 이제 지수 1만 포인트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갑니다.

하지만 주의할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에르칸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달 초 돌연 사임했는데요. 그는 X(트위터)에 남긴 장문의 글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죠.

(부연 설명=에르칸 총재의 친정 부모님이 매일 중앙은행으로 출근해 일종의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고 지난 1월 직원이 폭로. 이후 부모님이 사무실에 온 건 에르칸 총재의 모유 수유를 위해서였다-아들은 지난해 6월 임명 당시 생후 9개월-는 해명성(?) 기사가 이어지면서 들끓던 여론에 기름을 부음.)

1979년생인 에르칸 전 총재는 미국 경제학계와 금융계에서 이룬 성공으로 인해 튀르키예에선 오래전부터 유명한 인물이었다. 과거에 언론은 그를 ‘멋진 터키 소녀’라고 호칭하며 찬양하곤 했다. 하지만 튀르키예 중앙은행 최초의 여성 총재가 된 이후 그는 적잖은 구설에 시달렸다. 여론의 포화를 맞은 그의 발언 중엔 “이스탄불에선 집을 구할 수 없다. 너무 비싸다”가 있다. AP 뉴시스

에르칸 사임을 두고 튀르키예 야당이 내놓은 논평에 뼈가 있습니다. “에르칸 사임의 가장 큰 이유는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아르헨티나가 되려고 할 때, 에르칸은 상황을 깨닫고 일찍 떠났습니다.”(참고로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211.4%)

야당 말대로 튀르키예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다시 심상찮습니다.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새 다시 70%를 코앞에 뒀는데요. 새 중앙은행 총재인 파티 카라한은 현재 45%인 기준금리를 올해 “추가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죠. 인플레이션이 올 5월까지 72~73%까지 오르긴 하겠지만 이후 가파르게 하락해 연말이면 36%로 진정될 거라고 전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 기준금리로 물가가 잡힐까요. 또 아무리 금리 올리면 뭐 하나요. 정부는 지난주 1700만명의 퇴직자에게 5000리라(약 21만원)의 현금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발표하며 예산을 펑펑 쓰고 있는데요. 마침 3월 말이 튀르키예 지방선거이거든요. 선거 앞두고 재정지출 수도꼭지가 열렸습니다.

“4~5월 인플레이션이 80% 넘게 상승하고, 연말에도 잘해야 60%”(시난 알신 키르클라넬리대 교수)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이제 나옵니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긴축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튀르키예 인플레이션 문제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살아있다”(실바 바하르 바지키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코멘트에도 귀 기울일 만합니다. 만약 튀르키예가 여기서 금리를 더 올린다면 그땐 증시에 호재일까요, 악재일까요. By.딥다이브

예금금리가 45%라기에 놀랐는데, 물가상승률이 67%라니. 튀르키예 주식 투자자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예전 우리 동학개미 모습도 오버랩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튀르키예 주가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20% 오르면서 잘 나가고 있습니다. 2021년 말부터 시작된 랠리가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식 호황은 고물가에 습격당한 개미투자자들의 절박함 덕분이었습니다. 높은 수익률을 좇아 위험을 감수하며 주식투자에 뛰어든 겁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외국인 투자자도 합세했습니다. 비상식적인 경제정책을 펼쳤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연임 이후 경제정책의 정상화를 꾀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더 오를 거란 낙관론이 파다합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튀르키예 경제와 금융시장 모두엔 큰 변수로 남아있습니다.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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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