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2000명 증원은 지속성 없고 공대 황폐화할 우려 큰 데다 의대 현실 반영했다고 보기 어려워 대폭 늘리되 단계적 증원 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 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증원’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매년 2000명을 5년간 늘려 뽑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본다는 식의 계획이 지속성을 중시하는 교육 계획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나중에 1000명을 줄여 뽑는다면 그게 쉽게 되겠는가.
대학에서 증원을 신청한 규모가 2000명을 훨씬 넘어서는 3400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학의 위상과 재정 수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총장의 요구가 의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총장들의 요구와 의대 학장들의 요구가 다르다는 얘기가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2000명 증원 계획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김대중 때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을 5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린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사시 합격자는 한꺼번에 1000명으로 늘린 게 아니라 100명씩 5년에 걸쳐 1000명으로 늘렸다. 합격자가 김대중 때만 늘어난 것도 아니다. 전두환 때 10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고 다시 김영삼 때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도 단계적인 계획이었다면 좀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변호사 증원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사회 곳곳에 법치를 확산시켰다는 듯 말하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다. 서울대의 경우 사시 합격자 수가 5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법대만이 아니라 인문·사회대에서까지 사시 보는 학생이 늘더니 1000명으로 늘었을 때는 문과 전체가 사시판이 됐다. 결국 사시 낭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로스쿨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태가 빚어졌다.
로스쿨 정원 2000명도 막연히 정한 과다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로스쿨 정원은 1500명으로,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1200명으로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변호사 숫자가 늘어 수임료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측면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배고픈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사건이 되지 않던 것까지 사건으로 만들면서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소송 건수가 일본보다 3배가 많고 인구 비례로는 8배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툭하면 소송’이었는데 이런 상황을 개선할 대책 없이 변호사 숫자만 늘려 ‘툭하면 소송’을 더 부채질했다.
의사는 건강보험 체제에 속해 있어 의사가 늘어난다고 이미 싼 병원비가 더 싸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 증원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부족한 지역의와 필수의의 확보다. 그러나 의사를 몇 명까지 늘려야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포화상태가 되고 배고픈 의사들이 생겨 지역의와 필수의에 머무를까. 의사를 많이 늘리면 늘릴수록 피부과도 성형외과도 포화상태가 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이 문제에서 다다익선(多多益善)식 사고는 너무 단순 무식하다.
게다가 배고픈 의사들만 지역의와 필수의에 머무는 건 바람직한가.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역의와 필수의가 필요하지 않은가. 증원도 증원이지만 지역의와 필수의에 대한 의료수가를 조정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 감기만 걸려도 병원 가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는 예약이 어렵거나 비용이 비싸서 감기 정도로는 병원에 안 간다. 우리도 감기 정도로는 함부로 병원을 찾기 어렵게 개인 부담을 높이는 대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 근무라서 연봉 4억 원 자리를 마다하는 배부른 의사들을 보면 혀가 절로 차진다. 지역의와 필수의가 모자란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서인지도 모른다. 2000년 무렵 이후로 변호사 수가 2배 혹은 4배로 늘 때 의사 수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 대폭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매년 2000명씩 5년간 늘려놓고 보자’는 건 수긍하기 힘들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