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외후보 ‘10만명 지지 필요’ 조건에 영하 40도에도 지지자 줄지어 서명 대법 ‘오류 허용치 넘겨’ 후보 불허 EU 등 43개국 “나발니 사망 조사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
15∼17일 실시되는 러시아 대선에 출마하려다 4일 대법원의 출마 불허로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진보 성향 정치평론가 보리스 나데즈딘(61·사진)이 최근 러시아 독립매체 메두사에 한 말이다. 그는 출마는 좌절됐지만 반전(反戰)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대선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외에 3명의 후보가 더 나선다. 그러나 경쟁력 없는 이들만 선거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5선 ‘대관식’으로 여겨진다. 푸틴 대통령의 유일한 정적(政敵)이었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지난달 의문사한 후 야권 인사의 씨가 말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에서는 원외 정당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전국 행정구역 85곳 중 40곳 이상에서 총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나데즈딘은 전쟁을 반대하지만 푸틴 정권이 두려워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젊은 층과 변방 지역 유권자를 집중 공략했다. 혹한으로 유명한 극동 사하 자치공화국의 야쿠츠크에서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도 그의 지지자 수백 명이 매일 줄을 서서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수도 모스크바 등 대도시의 호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선관위는 지난달 8일 “나데즈딘이 받은 서명 중 오류 비율이 15%로 허용치(5%)를 넘겼다”며 후보 등록을 불허했다. 나데즈딘이 반발하자 4일 대법원은 “선관위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를 두고 나데즈딘이 대선에 나서면 반전 여론에 불이 붙으며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에 흠집이 날까 아예 출마를 막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서방의 규탄도 이어졌다. 4일 유럽연합(EU) 등 43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성명을 제출해 “푸틴 정권은 나발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투명한 국제 조사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