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에게 주주 환원책 설명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에도 SOS 英 팰리서,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 “과도한 경영권 개입, 역효과 우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미래에셋증권 빌딩. 이달 15일 주주총회를 앞둔 삼성물산 기업설명(IR) 담당자 2명이 미래에셋, 교보악사, 외국계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IR을 진행했다. 최근 해외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 주주 제안 등을 통해 삼성물산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기관투자가들에게 주주 환원책을 적극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7일에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다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 삼성물산의 IR이 예정돼 있다.
6일 금융당국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물산 주총을 앞두고 회사 측과 일명 ‘울프팩(wolf pack·늑대무리)’이라 불리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 간 위임장 확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표 대결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지난달 20일부터 주요 주주를 찾아다니며 의결권 위임장을 확보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일각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최근 보낸 주주 제안 서한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까지 일고 있다.
● 영국 ‘팰리서’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지분 0.42%)은 4일 행동주의 펀드 연합이 제시한 주주 제안에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삼성물산 지분 7.25%(작년 9월 말 기준)를 가진 국민연금에 보냈다.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 등 5개 행동주의 펀드의 연합(합계 1.46%)은 삼성물산 배당액을 사측 제시안 대비 70% 이상 늘리고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요구했다.금융당국도 주총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 제안 활동이 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팰리서의 서한은 정식 주주 제안은 아니지만, 사실상 다른 주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반 소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 “과도한 경영 개입, 역효과 낳아”
삼성물산은 국민연금, KCC 등 주요 기관투자가에게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에 40%에 가까운 소액주주들의 표가 몰릴 경우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감사 선임 안건 등의 통과 여부를 낙관할 수만은 없어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표 대결의 향방을 예견할 수 없기에 최대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글로벌 거버넌스 리서치 회사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0년 10곳 안팎이었던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 대상 국내 기업 수는 지난해 73곳으로 늘었다. 올해 주총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는 삼성물산 외에도 KT&G, 금호석유화학, KB금융지주, 한미약품, JB금융지주, 포스코 등을 상대로 최고경영자 선임, 배당, 지배구조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주주 제안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단기 시세차익만 챙기는 경우가 많아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소액주주 의견을 경영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순기능은 분명 있다”라며 “하지만 과도하게 경영권에 개입하는 식의 영향력 행사는 기업 투자를 막는 등 기업 가치를 낮추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