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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지원금 전액 비과세? 휴가도 못쓰는데…” [세종팀의 정책워치]

입력 | 2024-03-07 03:00:00

정부 “1억 받을땐 2500만원 절감”
직장인 평균 출산수당은 68만원
“소수 대기업 직원들만 혜택”




‘상위 10∼20% 대기업을 제외하면 지원금은커녕 출산휴가도 제대로 쓰기 힘들지 않나요?’

5일 기업이 근로자에게 주는 출산지원금에 대해 전액 비과세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자 한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이날 기획재정부는 출산 후 2년 내 기업이 지급한 출산지원금에 전액 비과세하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앞서 부영그룹이 임직원 70명에게 출산지원금 1억 원씩을 지급한 뒤로 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진 데 따른 조치입니다.

이를 두고 직장인들 사이에선 소수의 대기업 임직원만 혜택을 보는 정책이란 의견이 나옵니다. 기재부는 ‘연봉 5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출산지원금 1억 원을 받는 경우’를 가정해 약 2500만 원의 세액 절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사실 이건 아주 특수한 경우입니다. 세전 연봉 5000만 원이 근로자 상위 27% 수준(2022년 국세통계 기준)이라는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출산지원금 1억 원’을 받는 직장인은 정말 흔하지 않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출산·육아수당으로 연간 100만 원도 못 받는 직장인이 대다수입니다. 2022년 국세통계에 따르면 직장인 1인당 평균 출산·보육수당은 연 67만9000원 수준입니다. 현행 비과세 한도 240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죠. 부영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선 ‘출산지원금 무제한 비과세’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만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소득세를 깎아주는 방식의 출산 장려 정책은 저소득층에게 정책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소득층은 애초에 내는 세금이 적으니 깎아줄 수 있는 세금 역시 적다는 거죠.

하지만 정작 출산율 감소는 저소득층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75% 이하를 버는 저소득층은 2010년 대비 2019년 출산율이 51.0% 줄어든 반면, 중위소득의 200%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은 같은 기간 24.2%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

앞으로 거액의 출산지원금을 ‘쾌척’하는 기업이 계속 나오기만 한다면 이번 비과세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상위 10%’가 아닌 대다수 90%를 위한 출산 장려 정책도 이번 조치처럼 속도감 있게 추진되길 바랍니다. 지원금은커녕 휴가도 못 쓰는 직장인이 아직 많으니까요.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