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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키워 전쟁 막자” 재무장 선언한 獨의 신병 유치전[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4-03-06 23:39:00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독일 니더작센주 문스터의 연방군 기갑부대학교 훈련장에서 참가자들이 군인들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들은 나흘 일정으로 해당 부대에서 합숙하며 군 생활을 체험했다. 문스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펑!” “따다다다당!”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독일 북부 니더작센주 문스터의 기갑부대학교 훈련장. 드넓은 벌판을 달리던 독일군의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탱크 한 대가 숨겨진 표적을 향해 전차포를 쏘자 붉은 화염이 터져 나왔다. 방음 헤드폰을 낀 채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담던 20여 명의 군 합숙 참가자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10∼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인 이들은 독일군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살아있는 군대(Heer Live)’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나흘간 군부대에서 직접 합숙하며 탱크와 헬리콥터를 타 보고, 군인들의 복무 경험도 듣는 자리다. 참가자 라울 레실린 씨(18)는 “지금 본 각종 무기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전쟁의 위험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국이라는 이유로 그간 군비 확대를 자제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재무장을 선언했고 최근에는 ‘신병 유치전’에 주력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줄곧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독일 등 서방 주요국을 향해 ‘추가 개입을 하면 핵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드러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벌써부터 유럽 안보의 핵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독일 내에서도 ‘우리 안보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자강론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인구 감소로 장기적으로 군 병력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독일군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3년 만에 징병제 부활 논의
독일은 국방비 절감 요구 등으로 2011년 징병제를 중단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이후 연방군 현역 병력은 최근 20년간 31만7000명에서 18만3000명으로 대폭 줄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또한 나토의 권고치 2.0%에 못 미치는 1.4%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종 안보 위협이 커지자 독일은 재무장을 선언하고 병력을 키우고 있다. 우선 병력을 올해까지 19만8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국방부 소속 민간 인력도 같은 기간 5만6000명에서 6만1400명으로 보강한다.

독일 니더작센주 파르스베르크의 육공군 부대에서 군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헬리콥터에 탑승하고 있다. 파르스베르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독일에서는 “전쟁 위험에 대비해 군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군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 루카 마이어 씨(22)는 “군 입대가 의무였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신병 기초훈련을 받아 유사시 신속하게 현장 투입이 가능했지만 징병제 중단 뒤 군이 작아졌다”며 “지금 군인이 필요한 상황(전쟁)이 닥치면 어떻게 할지 의문”이라고 병력 강화를 주문했다. 문스터 시내에서 만난 주부 맨디 씨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또 어떤 전쟁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며 “아무 일(전쟁)이 없을 때일수록 군인을 늘려야 한다”고 가세했다.

일각에서는 2011년 폐지된 징병제 부활까지 촉구한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에바 회글 연방의회 군사위원은 지난달 징병제 도입을 논의하기 위해 시민 의회를 소집했다. 인근 주요 도시인 하노버 도심에서 만난 시민 에리카 마이즈 씨 역시 8000만 명이 넘는 독일 인구에 비해 병력의 수가 너무 적다며 “1년간의 징병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독일군은 외국인 입대 허용을 위해 법 개정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1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외국인의 독일 연방군 입대 허용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독일에서는 시민권자만 군 복무가 가능하다. 반면 프랑스, 덴마크, 스페인, 슬로바키아는 외국인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행보에 대한 반대 여론도 있다. 전쟁을 우려한 군비 증강이 오히려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 위험을 더 키우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독일 경제가 어려우니 국방비에 쓸 재원을 경제 살리기에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시민 니콜 사라 보도나로 씨는 “세금을 투입해 군을 키우면 전쟁에 휘말려 사람만 죽을 뿐”이라며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록 공연서 채용 설명회
독일군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군 입대를 기피하자 여러 대안도 짜내고 있다. 특히 딱딱하고 보수적인 기존 군대의 이미지 대신 ‘열린 군대’의 이미지를 강조해 예비 군인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살아있는 군대’ 체험 프로그램을 여러 부대로 확대하기로 했다. 당초에 시범사업으로 진행됐지만 일찍이 프로그램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점도 확대 배경이 됐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랄스 야코보이트 연방군 중령은 “우리의 목표는 참가자들이 실제 군 장비를 최대한 손으로 만지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며 “군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군에 대한 편견이나 루머도 없애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독일군은 ‘열린 군대’의 이미지를 강조하려 각종 홍보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취재팀이 방문한 문스터 부대에서 군 관계자는 취재팀의 추가 취재 요청에 예정에 없던 공군 부대 취재까지 순식간에 허용해 줬다. 한 공군 관계자는 “올 6월 8일에 공군 에어쇼가 열린다”며 그때 추가 취재를 위해 다시 오라고 제안했다.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록 페스티벌이나 자동차 경주대회 등에서 ‘찾아가는 채용설명회’도 연다.

야코보이트 중령은 젊은 군인의 입대를 독려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반나절 근무, 육아휴직 및 재택근무 등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기 퇴역을 하는 군인들에게도 직업 교육의 기회를 준다. 사회에 나가도 구직에 문제가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英 “시민 군사훈련 필요”
신병 지원자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병력 확대와 군비 증강을 시도하는 흐름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군인 급여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수라고 조언한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는 지난해 입대한 인원보다 퇴역 인원이 5800명 많다면서 신병 모집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영국 디펜스저널 또한 “영국군이 2010년 이후 매년 모집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영국 일각에서는 시민 군사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패트릭 샌더스 육군 참모총장은 올 1월 “3년 안에 정규군, 예비군, 전략적 예비군(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전역 군인)을 포함해 12만 명에 달하는 더 많은 육군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며 “이 숫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중이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벨기에 또한 예비군 복무를 독려하며 병력 확대에 안간힘이다. 브뤼셀타임스에 따르면 뤼디빈 드동데르 국방장관은 지난달 “많은 이가 내게 연락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데 관심이 있다. 다른 시민의 안전도 지켜주고 싶다’고 한다”며 “국방부는 그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특히 예비군 역량을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문스터·하노버·파르스베르크에서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