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듀오 오데트 역 맡은 솔리스트 조연재 “역대 출연작 중 가장 어렵지만, 백조 그 자체 되려 휴가때도 연습” 지그프리트 역 수석무용수 박종석 여러 무대서 조연재와 연인 호흡… “진짜 사랑의 감정 표현하려 노력”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지는 고전 발레의 대명사 ‘백조의 호수’. 순백색의 튀튀를 입은 24명의 무용수들이 추는 백조 군무는 공연의 백미 중 하나다. 국립발레단 제공
카메라에 불이 켜지고 두 무용수가 눈을 맞추자 연습실 검은 장막에 푸른 달빛이 사푼 내려앉은 듯했다. 밤마다 백조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오데트와 악마의 방해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려는 왕자 지그프리트. 호수만큼 시린 눈빛이 허공에 걸렸을 땐 이들이 사랑의 주역으로 거듭 호흡을 맞추는 이유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으로 호흡을 맞추는 무용수 조연재(왼쪽)와 박종석. 이들은 “숱한 파트너들을 만나봤지만 눈빛으로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이만큼 잘되긴 쉽지 않다. 서로의 감정에 빠르게 몰입하며 힘든 줄 모르고 연습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는 세계적인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버전으로 남녀 무용수 모두에게 고강도 체력과 정교한 연기를 요구한다. 박종석은 “1막 1장은 내내 뛰어다니기 때문에 연습한 날엔 따로 유산소 운동을 안 해도 될 정도”라며 “그 대신 공연을 끝낸 뒤 돌아오는 행복도 2배”라고 했다. 조연재는 역대 출연작 중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를 꼽았다. 그는 “백조를 표현하려 뒤로 꺾는 팔의 움직임이 매우 까다롭다. 태생적으로 왼쪽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고백했다.
“이때 지그프리트가 받는 충격은 완전히 제 것이에요. 오데트와 사랑에 빠질 때, 자기 잘못을 깨닫고 슬픔을 느낄 때 아내와의 일들을 생각하죠. 일상에서 느낀 진짜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섬세한 연기로 공연마다 호평을 받는 박종석은 2016년 입단 후 5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조연재 역시 승급 속도가 매섭다. 2018년 입단한 해에 ‘호두까기 인형’ 마리 역으로 주역에 곧장 데뷔했다. 올해 1월엔 드미솔리스트에서 솔리스트2를 건너뛰고 솔리스트1로 두 계단 점프했다. 입단 동기 중 승급이 가장 빠르다.
“‘백조의 호수’를 잘하고 싶어서 연말연초 휴가에 쉬지 않고 연습을 했거든요. 그런데 1월 첫 출근 날 발목이 돌아갔어요. 발레가 내 길이 아닌 걸까 하늘을 원망했죠. 병가를 내고 병원에 다녀오는데 승급 전화가 와서…포기하지 말라는 거구나, 큰 힘이 됐죠.”
두 사람에게 빠르게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물었다. 조연재는 “연습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우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할 일은 하자’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하려 한다”고 했다. 박종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같은 답을 내놓았다. “집 가서 털고 다음 날부터 그냥 다시 하는 거죠. 안 되는 걸 계속 해보고 또 해보면서.”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