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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현장]전공의 갈등 해결책, 이미 논의했던 수련시스템 개편안에 있다

입력 | 2024-03-07 03:00:00

저수가에 허덕이는 의료 현장이 단순히 의사 증원으로 개선될까
국가책임제로 전공의 육성하면 지방-필수 분야 배치할 수 있어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 지역별, 전공별 의사회 깃발을 든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을 규탄하고 있다. 이날 경찰 추산 약 1만2000명(주최 측 추산 약 4만 명)이 모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최근 미국의 한 전직 의대 교수가 약 1조3000억 원을 미국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에 기부해 모든 의대생 학비가 면제됐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져 화제가 됐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대의 연간 학비는 한국 돈으로 약 8000만 원에 달한다.

이 교수는 “비싼 학비와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의사의 꿈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보고 장학금 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혜택을 받은 의대생 중 상당수는 나중에 사회에 나가 기부 대열에 동참하면서 사회적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의사가 공무원인 영국의 경우 국가가 의대 등록금, 졸업 후 전공의 수련 비용 등을 지원한다. 심지어 의료 분쟁 시에도 국가가 개입해서 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은 국가의 통제 시스템 속에서 묵묵히 본인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자본주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경우도 전공의 수련 비용에 주 예산 등이 투입된다. 병원 교수들이 연구와 진료 외에 전공의를 가르치는 것에 보상하는 것이다. 최근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편으론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다.

필자도 의대생일 때 중고생 과외를 하거나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과 학비를 마련했다. 그나마 국립대라 다른 의대에 비해 등록금이 절반 이상 저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공의 때를 돌아보면 병원에 따라 연봉이 달랐는데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 중 가장 많이 받는 곳이 A 병원이다 보니 일부러 그곳에 지원한 동료도 있었다. 당시 전공의 연봉은 2000만∼4000만 원가량이었는데 실제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은 월 120만∼150만 원 정도였다. 물론 20년 더 된 2000년도 기준이고 지금은 2배 가까이로 늘었다고 들었다.

결국 전공의를 마칠 때까지 정부 지원은 거의 없는데 막상 개원하려 하면 정부가 당연지정제를 통해 건강보험으로 통제한다. 당연지정제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모든 국민이 어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의사들은 건강보험의 저수가로 환자들을 많이 봐야 병의원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지 않으면 비보험 진료 등에서 수익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대형 병원들이 장례식장, 주차장 등에서 수익을 올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의료제도 모순의 대부분은 현재의 의료수가로 운영할 경우 상당수가 적자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생긴다.

특히 최근에는 갈수록 심화되는 저출산과 민형사 소송 위험 등으로 소아청소년과 및 산부인과 의사들이 피부 미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 실비보험으로 비급여 수익이 늘어나면서 필수의료에 있던 많은 의사들까지 개업에 나서는 상황이다. 여기에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라는 소위 ‘문재인 케어’는 지방에 있는 많은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오게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지방 병원들은 의사 인력을 구하기 힘들게 됐고 지방 병원 운영은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단순히 의사 수 2000명을 증원하고 5년 동안 10조 원을 투입한다고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는 뜻이다.

국민 중에는 2000명 증원을 포함한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낮은 의료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의사들에 대한 불만이 증폭됐다고 본다. △병원에 입원해도 담당 교수 얼굴조차 못 보고 △병원에서 3시간 기다렸는데 의사는 컴퓨터 화면만 보면서 3분 진료로 마무리하고 △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함부로 대하고 △응급실에 가도 제때 치료를 못 받은 경험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의사와 환자 관계를 갈등 관계로 만들고 있는 건 지금의 의료 시스템이다. 환자들의 불편을 줄이려면 현재의 저수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충분한 수가를 주면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들을 30분 이상 진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국민들이 의료비를 더 내야 한다. 또 지방에 있는 환자들이 수도권에 몰리지 않도록 하려면 병원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수가를 통제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면 10년 후 전문의가 배출된다. 당장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안 중 하나로 필자는 전공의가 수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모두 지원하는 ‘국가책임제’를 제안하고 싶다. 정부가 3000여 명의 전공의 인력을 직접 운영하자는 것이다. 다른 접근법에 비해 예산 부담도 덜하다.

이 제도를 통해 정부가 지방에 고루 전공의 인력을 파견하면 지방의 부족한 의사뿐 아니라 필수의료 인력 부족 현상도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필수의료 중점 교육을 실시하면서 전반적인 수련의 수준도 높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지난해 정부와 의료계가 전공의 수련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에서도 7차례에 걸쳐 논의했던 정책 중 하나다. 지난해 본보 5월 19일자 필자 칼럼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정부도 다시 한번 살펴봐 주길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