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혼란]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실 가보니… 전공의들 병원 이탈 3주째 사흘에 한번꼴 ‘나홀로 야근’… 인턴이 하던 콧줄-소변줄 삽입도 전국 수련병원 응급실 ‘그로기 상태’… ‘번아웃’ 못견딘 일부 전문의도 떠나
5일 밤 경기 구리시 한양대 구리병원에서 야근을 하던 응급의학과 김창선 교수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 교수는 이날 기자가 옆에서 지켜본 3시간 반 동안 응급실에서 14명의 중증 환자를 혼자 맡았다. 김 교수는 “전공의가 없다 보니 제가 실수하면 바로 사고가 나는 구조라 항상 긴장된다”고 말했다. 구리=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5일 오후 10시 20분경, 경기 구리시 한양대 구리병원.
80대 여성 심정지 환자가 실려 오자 응급실에 비상이 걸렸다. 바쁘게 병상을 돌며 응급 환자를 진료하던 응급의학과 김창선 교수(46)를 필두로 응급실에 근무하던 간호사 대부분이 즉시 달려가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하지만 15분간의 사투에도 환자는 숨을 되찾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진료와 검사를 기다리던 환자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 4인 1조였던 응급실에 교수 혼자 남아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 3주째로 접어들면서 전국 수련병원 응급실 상당수는 말 그대로 ‘그로기(groggy·혼미)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수련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자리를 지키던 레지던트 4년 차들이 지난달 말 수련을 마치자 병원을 떠나고, 이달 초 임용 예정이던 인턴과 레지던트 및 전임의(펠로)까지 대거 임용을 포기하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이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 병상이 18개 있어 전공의 이탈만 없었다면 환자 8명을 돌보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전공의가 심정지 환자를 도맡는 동안 나머지 의사들이 다른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콧줄·소변줄 삽입, 진료 동의서 받기 등 막내 인턴이 하던 일까지 교수가 나서야 한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집단 사직 전엔) 당직 중이던 내·외과 전공의들도 필요할 때면 응급실로 내려와 진료를 도왔다. 이제 이마저 없어 응급의학과 교수들의 진료 부담이 몇 배로 늘었다”고 했다.
● “매일 사고만 안 나길 빌 뿐”
인력 부족은 의료 서비스 질 저하와 직결되고 최악의 경우 의료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평소 전공의가 초진을 하고 오더(처방)를 내리면 교수가 ‘더블체크’를 하는데 지금은 제가 실수하는 즉시 사고가 생긴다”고 했다. 수도권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매일 ‘내가 근무할 때 사고만 안 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근무를 서는 교수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경증 환자와 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30% 넘게 줄어든 덕분에 병원들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진실이라는 게 의료계의 반응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줄어도 중환자 수는 그대로다 보니 진료 부담은 거의 줄지 않는다”며 “공공의료원이 진료 공백을 메워준다고 하는데 조금만 중증이어도 ‘역량이 부족하다’며 받기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응급 전문의 70, 80명 사직”
전공의 공백으로 인한 ‘번아웃’(탈진)을 견디다 못해 일부 전문의도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병원과 연 단위로 계약해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70, 80명이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병원을 나가겠다고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응급실 외에도 곳곳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수술을 절반가량으로 줄였던 빅5 병원(삼성서울, 서울대, 서울성모, 서울아산,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과목에 따라선 수술을 평소의 3분의 1로 더 줄이고 있다. 경희대병원 응급실은 당직 의사 부재로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부산대병원은 유사 진료과끼리 병동을 통합했다.
구리=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