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백인이 집을 구하지 못하게 막던 시절에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하숙을 연 흑인 부부가 있다. 하숙은 190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휴양지 코로나도에서 일하던 비백인들의 거처가 됐다.
거스와 에마 톰슨 부부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부는 1939년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자택을 팔아 당장 큰돈을 손에 쥐는 대신 중국계 이민자 동 씨 가족에게 빌려줬다. 마침내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찾은 이들은 미국 정착에 성공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에 500만 달러를 기부한 론 동(왼쪽 두 번째)과 로이드 주니어(오른쪽 두 번째) 형제가 어릴적 살던 자택 앞에서 부인들과 함께 지난달 찍은 사진. 형제는 중국계 미국인 2세대로 미국 정착을 도운 흑인 부부에게 보답하고자 이 학교 흑인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내놨다. 샌디에이고주립대 제공
톰슨 부부는 1860년대 켄터키주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났다. 둘은 1880년대에 코로나도로 이주해 마구간을 운영했다. 당시 이 지역에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비백인이었다. 부부는 넉넉하지 않은 사정에도 어렵게 사는 이웃을 앞장서 도왔다. 특히 시정부가 비백인을 상대로 주택 임대와 판매를 금지하자 헛간을 하숙으로 개조해 운영했다. 규제의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이용해 규제 시행 이전부터 소유한 부동산을 활용하는 묘책을 쓴 것이다.
1939년 톰슨 부부가 임대해준 이래 동 씨 형제가 독립할 때까지 산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로나도 자택 앞에서 지난달 찍은 사진. 샌디에이고주립대 제공
그런데 1939년 톰슨 부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며 가족에게 “나중에 당신들에게 팔겠다”는 약속과 함께 집을 빌려줬다. 마침내 안정을 찾은 덕택에 미국 사회 정착에도 성공했다. 장남은 교사, 차남은 세금대리인으로 자리 잡았다. 동 씨 가족은 1955년 집과 헛간을 부부로부터 매입했다. 이번 기부금은 이 집과 아파트로 재개발한 헛간을 팔아 마련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