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0년경 제작된 페리클레스(기원전 495?∼기원전 429) 흉상. 그는 절대적 권력자였지만 그리스 민주정을 꽃피운 역설적 인물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영리함과 도덕성 겸비한 지도자
네덜란드 화가 로런스 알마타데마의 1868년 그림. 파르테논 신전 재건을 맡은 아테나이의 유명 조각가 페이디아스(왼쪽에서 세 번째)가 페리클레스(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일행들에게 공사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테나이의 ‘민주적 권력자’ 페리클레스는 페르시아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재건을 추진했고, 아테나이 정치와 문화는 이곳을 중심으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페리클레스의 역량을 다른 쪽에서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실천적 지혜’를 갖춘 사람으로 여겼다. 영리함과 도덕성을 함께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실천적 지혜’가 발휘되는 영역은 셋이다. 개인사, 가정, 정치. 그렇다면 페리클레스는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의 모든 일에서 실천적 지혜를 발휘했을까?
‘말 많았던’ 대중에 휘둘리지 않아
정치에서는 어땠을까? 페리클레스는 대외적으로 아테나이의 패권을 확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민주정을 완성시켰다. 그는 재산 유무에 상관없이 공직을 시민들에게 개방했고, 공직자들에게 급료를 지급했다. 생계 때문에 공적인 일에 무관심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아테나이인 부모를 가진 사람에게만 시민권을 허용한 것도 그의 정책이었다. 개방성에서 후퇴한 것 같지만 아테나이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지금도 그리스 문명을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한 사람도 페리클레스다. 그 일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가난한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뉴딜 정책’이었다.
공정한 정치 위해 가족 불화도 감수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시민 대중을 이끈 페리클레스의 힘은 칼의 힘이 아니라 말의 힘이었다. 그는 연설을 통한 설득에 탁월했다. 그가 입을 열면 천둥, 번개 같은 연설이 쏟아져 그의 별명이 ‘올림포스의 주인’, 즉 제우스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설이 유창해도 그것이 강제적 협박이나 교활한 자의 감언이설이었다면 대중은 설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 사람을 한 번 속일 수는 있어도 백 사람을 백 번 속일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묻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아테나이인들을 상대로 그런 협박과 거짓이 통했을 리 없다.
대중을 설득하면서도 자식 하나 다독이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지만 이 아이러니 안에 우리 삶과 정치의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가족과의 불화를 감수하는 의로움이, 가족 관계보다 공적 책임을 앞세우는 자세가 페리클레스에게 없었다면, 그를 향한 시민 대중의 절대적 신뢰도 없었을 테니까. “똑같은 처지에서 자식들을 빼돌려 위험을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은 국정을 의논하는 데 공평할 수도, 공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런 도덕적 신념과 진짜 실력이 없이 어느 누가 30년 동안 대중의 신뢰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권력을 위해 대중에 아첨하지 않는 것, 대중의 분노를 무릅쓰고 옳고 그름을 당당히 따지는 것, 과욕을 제어하고 낙담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 페리클레스를 ‘민주적 권력자’로 만든 것은 바로 그런 능력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페리클레스는 후대 정치가들과 달랐다. “그의 후계자들은 서로 똑같아서 저마다 일인자가 되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대중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했고 중대사를 대중의 기분에 내맡겼다.” 시켈리아 원정도 그런 처세에서 비롯된 잘못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적인 음모를 꾸미느라 원정대 업무의 발목을 잡았고 처음으로 국정을 사분오열의 혼란에 빠뜨렸다.”
페리클레스의 사례는 좋은 정치의 길을 보여준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나쁜 정치다. 도덕이 없는 영리함의 정치,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전에 입을 막는 정치는 아주 나쁜 정치다. 페리클레스 이후의 아테나이 민주정은 그런 나쁜 정치 때문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영리하면서도 도덕적인 사람들의 정치, 그런 정치가들을 찾아내는 시민의 역량만이 유사한 파국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칼럼을 끝으로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의 연재를 마친다. 지난 3년 동안 관심을 갖고 칼럼을 읽어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스 사상과의 대면이 우리의 삶을 더 깊고 더 넓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