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주택연금 ‘高 高 高’… 가입-지급액-고가주택 최고치

입력 | 2024-03-08 03:00:00

“집값 더 떨어지기 전에 들자”… 지난해 신규 가입 1만4885건
연금 지급액 2조3856억 신기록
시세 12억 초과 주택 가입 6배로
요건완화 -노후준비 부족도 영향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장모 씨(61)는 지난해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은퇴한 뒤 별다른 소득이 없어 주택연금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 자녀의 결혼 자금으로 퇴직금 대부분을 당겨 쓴 탓에 그에게 남은 자산은 사실상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 시세(11억3000만 원)를 고려하면 주택연금으로 매달 22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장 씨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인 만 65세까지 버티기에는 현금이 턱없이 부족해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가입 요건 완화 등의 영향으로 주택연금 수요가 급등하며 지난해 연금 지급액과 신규 가입 건수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에도 부동산 경기 반등이 쉽지 않은 데다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중장년층 비율도 높아 한동안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주택연금 지급액, 가입 건수 모두 역대 최대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한국주택금융공사(HF)로부터 받은 ‘주택연금 가입 및 해지 추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연금 지급액(2조3856억 원)과 주택연금 신규 가입 건수(1만4885건)는 모두 역대 최대치로 조사됐다.

주택연금 수요 증가의 주된 이유로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꼽힌다. 주택연금은 가입 시점의 집값을 기준으로 월 지급금이 산정되기 때문에 추후 집값 하락이 예상되면 가입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입 요건을 낮춘 점도 주효했다. HF는 지난해 10월 주택연금 가입 대상 주택을 공시가격 9억 원(시세 약 13억 원) 이하에서 12억 원 이하로 변경했다. 시세로 약 17억 원인 고가 주택 보유자까지 가입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12일부터 11월 말까지 시세 기준 12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가입은 299건으로 1년 전 동기(51건) 대비 6배 수준으로 늘었다. HF 관계자는 “시세 13억 원이 넘는 고가 주택 보유자들의 주택연금 가입 수요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 노후 준비 부족에 ‘상속’ 대신 ‘연금’


이런 추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은 “기준금리 인하 외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반전시킬 만한 요인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며 “최소한 상반기(1∼6월)까지는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택연금 수요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의 노후 준비가 부족한 점도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해 6∼8월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8∼1974년생)를 대상으로 노후 준비 관련 설문을 진행한 결과 노후에 필요한 자산을 80% 이상 확보했다는 응답자는 13.3%에 그쳤다.

HF 역시 올해 주택연금 보증 공급 목표액으로 25조4904억 원을 설정했다. 21조7349억 원으로 추산되는 지난해 공급액보다 3조7555억 원(17.3%) 늘어난 것으로 제도가 도입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치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주택연금 가입 수요 증가세의) 변수는 부동산 경기”라면서도 “추후 주택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일정 이자를 지급하면 주택연금 해지 후 시세차익을 거두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만큼 가입 결정을 좌우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