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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과대포장 규제’ 시행 코앞서 또 뒤집은 환경부[기자의 눈/김예윤]

입력 | 2024-03-08 03:00:00

김예윤·정책사회부


환경부는 7일 브리핑에서 다음 달 30일 시행 예정이었던 ‘택배 과대포장 규제’에 대해 “현장 여건을 고려해 2년간 계도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번이 몇 번째냐”는 말이 나왔다. 환경부는 지난해도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 시행을 한두 달 앞두고 무기한 유예하겠다며 물러났다.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2022년 4월 발표됐다. 전자제품이나 의류 등을 택배로 보낼 때 포장 공간 비율을 박스의 절반 이하로 하고, 포장은 한 차례만 하라는 내용이었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도록 물건 크기에 꼭 맞게 포장하라는 취지였다.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다음 달 말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단속이나 과태료 부과 대신 ‘자발적 참여’로 방향을 튼 것이다. 환경부는 “대상 제품의 종류만 1000만 종 이상이라 빈 공간 비율이나 포장 횟수만으로 규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묻고 싶은 건 2년 전 발표 때는 연 40억 개에 달하는 택배 상자를 일일이 검사하는 게 어렵다는 걸 몰랐냐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양과 크기의 제품의 포장을 두 기준만으로 단속하기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18년 쓰레기 대란이 발생하면서 과잉 입법된 측면이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정책을 강행해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수년 전 예고했던 정책을 시행 직전 번번이 뒤집는 건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도입 단계부터 실현 가능성을 세밀히 검토하거나, 시행 시기를 보다 현실적으로 두고 단계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다. 유럽연합(EU)은 한국과 같은 시기(2022년) 포장재 폐기물 감축 규제 도입을 예고하며 2030년에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연초부터 정부가 ‘세부 가이드라인’을 내놓길 기다리던 유통업계는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종이빨대를 대거 주문했다가 후회했던 자영업자처럼 정부를 믿고 준비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어떤 정책도 원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