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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서 망고 먹는 마티스’… 상상여행서 거장을 만난다

입력 | 2024-03-08 03:00:00

벨기에 작가 판 더 펠더 개인전 개막
“경험보다 상상이 더 흥미진진”… 작업실 밖 안 나가는 작가로 유명
마티스-몬드리안 작가 등 소재 삼아… “꿈꾸면 다른 세계 만날 수 있다” 역설




작업실 밖을 나가지 않는 작가가 야외에서 자연 풍경을 그린 ‘외광파’ 스타일의 회화를 그릴 수 있을까.

벨기에 출신 작가 리뉘스 판 더 펠더(리너스 반 데 벨데·사진)는 상상의 힘을 빌리면 안락의자에 가만히 앉아서도 다른 시대와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와 서초구 스페이스 이수에서 8일 개막하는 개인전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통해서다.





● 종이와 물감으로 만든 세계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영상 작품 ‘하루의 삶’(2021∼2023년). 갤러리바톤 제공

아트선재센터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하루의 삶’ 속에는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등장한다. 작가의 도플갱어인 이 인물은 갤러리에서 외광파 작가들의 드로잉이 담긴 가방을 건네받는다. 그 다음 은행의 비밀 금고처럼 조성된 공간으로 이동해 이 드로잉들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해석해 작품으로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영상 속 모든 공간이 나무 합판이나 골판지 위에 물감을 색칠해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관객은 영상 속 세계가 기계나 컴퓨터가 아니라 작가가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화려하고 거창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상상력을 발휘하면 현실을 넘어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무엇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며 “상상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고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 더 펠더는 웬만하면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상 작품도 거대한 스튜디오 내에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전부 촬영됐다. 문지윤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디렉터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오기로 결심하고 모든 것을 계획했는데, 홍해 후티 반군 도발로 물류 운송 등 일정이 틀어지면서 작업실 밖을 나오기를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 미술사 속 작가들과 상상의 만남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전시의 중심이 되는 두 영상 작품 ‘라 루타 나투랄(내추럴)’과 ‘하루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또 영상 작품에 사용되었던 골판지 자동차, 과일 판매점이나 나무와 식물, 건물의 미니어처가 함께 전시된다.

리뉘스 판 더 펠더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말을 인용한 작품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년). ⓒ 리뉘스 판 더 펠더 제공

전시 제목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마티스는 그림을 그리기 가장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작가는 이 글귀를 자신의 추상 작품 아래에 적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쪽으로 떠나지 않고도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상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영상뿐 아니라 회화를 통해 그는 마티스, 에밀 놀데(1867∼1956),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 같은 미술의 역사에 남았지만 작고해 마주할 수 없는 작가를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외출을 잘 하지 않는 자신과 정반대인 외광파 화가를 주요 소재로 다루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꿈꾸고 욕망하면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스페이스 이수에서는 영화 세트이자 조각인 ‘소품, 터널’과 목탄 드로잉, 탐험가나 예술가 등 실존 인물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오일 파스텔화를 볼 수 있다. 5월 12일까지. 아트선재센터 5000∼1만 원, 스페이스 이수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