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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가 작아지는 이유…슈링크플레이션의 심리학[딥다이브]

입력 | 2024-03-09 10:00:00


날이 갈수록 쿠키와 비누는 작아지고, 휴지는 얇아지고, 음료수병은 날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양반김의 한봉지 용량은 5g에서 4.5g으로, 서울우유 체다치즈 한봉지(20매)는 400g에서 360g으로 각각 10%나 줄었다죠.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여서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 소비자 분노가 폭발하고 있죠. 지난달엔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초콜릿바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언급했을 정도인데요. 그런데 냉정하게 한번 따져봅시다. 왜 이렇게까지 제조업체들은 제품 용량을 줄이려고 안달일까요. 또 이에 대해 소비자는 왜 그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이를 다룬 최신 경제학과 마케팅학 논문 세 편을 기반으로 슈링크플레이션과 그 혐오증을 들여다봅니다.

왜 점점 용량이 줄어드는 거지. ‘같은 비용, 더 작은 용량’ 슈링크플레이션. 이미지는 BING AI 크리에이터로 생성.

*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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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째 이어진 수축
수축(shrink)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용어는 2009년 영국 출신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창안했는데요. 사실 이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국제적 현상입니다.

학계에 잘 알려진 사례 중엔 1988년 미국 커피 브랜드 촉풀오넛츠(Chock full o’Nuts)가 있죠. 당시 가루 커피 한캔 용량은 1파운드, 즉 16온스가 표준이었는데요. 이 회사는 은근슬쩍 용량을 13온스로 줄입니다. 용량을 표시한 글꼴 크기도 일부러 작게 줄였죠. 교묘하게 단위가격을 23%나 올린 이 전략은 성공했고, 다른 커피 회사도 이를 따라 하면서 ‘가루 커피 한캔=13온스’가 대세가 됩니다(이후 11온스로 더 줄임).

스위스 토블론 초콜릿바는 2016년 삼각형 사이 공간을 넓히는 방법으로 제품 용량을 10% 줄였다. 하지만 모양 변화가 너무 티가 나서 소비자 불만이 쏟아졌다. 아래 사진이 기존 모양, 위 사진이 용량을 줄인 제품.

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 기만행위라고요? 네, 동의하지만 법적으로는 좀 따져볼게요.

대부분 국가는 포장지에 제품가격뿐 아니라 단위당 가격도 함께 표시하도록 의무화합니다. 미국은 1967년부터, 한국도 1999년부터 ‘단위가격 표시의무제도’를 운영 중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84개 품목이 대상이고요. ‘100g당 500원’, ‘100㎖당 1000원’ 식으로 가격을 표시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비교할 수 있게 말이죠. 만약 기업이 이 단위 가격을 명확하게 제품에 표시했다면, 대부분 국가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은 합법적입니다.


①정신물리학; 크기 인식의 오류
인플레이션이야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죠. 원자재나 인건비 같은 비용이 상승할 때, 기업의 선택지는 보통 세 가지입니다.

1. 제품 가격을 올린다.
2. 더 저렴한 재료로 만든다.
3. 제품 용량을 줄인다.

그리고 많은 경우 3번을 선택합니다. 토블론은 삼각형 사이 공간을 늘려서 초콜릿바 용량을 10% 줄였고요. 게토레이는 ‘더 잡기 쉽고 공기역학적’이라며 병 모양을 바꿔 용량을 14% 줄였죠. 왜 그럴까요.

일단 정신물리학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크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물체의 실제 크기와 다릅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인데요. 특히 크기 변화가 삼차원으로 발생하면 소비자는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슈링크플레이션과 ‘높이 편향’을 설명하는 싱가포르 CNA 방송의 보도 화면.

대표적인 게 ‘높이 편향’이죠. 가늘고 높은 물체는 굵고 낮은 물체보다 용량이 커 보입니다. 너비보다는 높이가 가장 눈에 띄는 치수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용량이어도 길쭉한 병에 든 주스, 길쭉한 상자에 든 과자가 소비자에겐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죠.

만약 제품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밑면적을 줄인다면? 아마 대다수 소비자는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또는 차이가 얼마 안 된다고 과소평가하겠죠. 제조사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제품 용량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②인지 편향=소비자는 가격만 본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또 다른 강력한 인지 편향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격에 집중하는 편향인데요. 호주 맥쿼리대학의 야오 준 박사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 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호주 브리즈번 슈퍼마켓에서 5개 제품(코코넛롤, 과자, 비스킷, 두유, 코코넛워터)을 가지고 실험했습니다. 4주에 걸쳐 매주 이 제품의 가격 안내판을 바꾼 뒤 판매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했죠. 사실 이 기간에 실제 제품 가격이나 용량엔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요. 마치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이전 판매가와 제품 크기에 대한 정보를 바꿔 표시했습니다.

실험 결과가 흥미로운데요. 4주 동안 판매량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1. 용량은 그대로, 가격만 올렸음 = 391개
2.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은 줄었음 (일반적인 슈링크플레이션) = 435개
3. 용량이 늘었지만 가격도 올림 = 448개
4. 가격이 내려갔지만 용량도 줄어듦 (변형된 슈링크플레이션) = 530개

네 경우 모두 단위 가격은 똑같이 올랐다고 안내했거든요(코코넛롤 10g당 38센트→43센트). 그러니까 상식적으로는 판매량이 크게 달라질 이유는 없었는데요. 실제로는 차이가 꽤 컸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만 올리는 것(1번)보다는 차라리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2번)일 때 더 많이 구매했고요. 특히 용량과 가격이 동시에 다운되는 ‘변형 슈링크플레이션’(4번)은 엄청난 호응을 끌어냈습니다.

왜일까요? 야오 준 박사는 ‘실버 라이닝 효과(silver lining effect)’로 설명합니다. 작은 이익(더 낮은 가격)을 큰 손실(더 작은 용량)에서 분리하면(4번), 그냥 손실만 있는 경우(1번 또는 2번)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야오 준 박사는 “쇼핑객에겐 크기나 무게보다 가격이 더 눈에 띈다”면서 “사람들은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그게 적은 용량을 뜻하더라도) 타고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가격만 보는 인지 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그게 바로 제조사들이 제품 용량 줄이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라는 겁니다.


③용량 감소보다 가격 인상에 4.6배 민감
소비자가 용량 줄이기보다는 가격 인상에 더 민감하다는 건 경험적으로도 확인됩니다. 그럼 그 민감도 차이가 얼마나 될까요.

서강대 김인경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연구했는데요. 김 교수는 2018년 남양유업이 맛있는우유GT 1000㎖ 제품 용량을 900㎖로 줄인 뒤 판매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가지고 분석했습니다. 결론이 좀 놀라운데요.

김인경 교수가 ‘가격인상보다 다운사이징에 대한 소비자 선호’ 논문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남양우유 제품. 2018년 생산원가를 이유로 남양유업은 1000㎖ 제품(왼쪽) 용량을 900㎖로 줄이면서 패키지를 바꿨다.

제품 용량을 10% 줄인 건 단위 가격을 11.1%나 올린 것과 똑같거든요. 아시다시피 수요는 가격에 반비례하죠. 김 교수가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 정도 가격 인상이면 관찰 기간(61주) 동안 이 제품 판매량이 4600만 리터로 줄어든다는 예측이 나왔는데요.

실제 판매량은 무려 5500만 리터. 예측치를 20%나 웃돌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팔린 거죠. 이를 시뮬레이션과 비교한 결과, 용량을 그대로 두고 제품 가격을 2.4% 올린 것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남양유업 전략이 맞아떨어진 겁니다. 만약 용량을 줄이는 대신 제품 가격을 11.1% 인상하는 정공법으로 갔다면 판매량 타격이 훨씬 컸겠죠.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소비자들은 다운사이징(용량 감소)보다 제품가격 인상에 약 4.6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하는데요. 민감도 차이가 그렇게 크기 때문에 기업은 슈링크플레이션이란 꼼수를 써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만큼 소비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손실을 입고 있고요.


슈링크플레이션 혐오증
여기까지만 보면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용량을 줄여도 소비자들이 많이 사잖아? 그럼 소비자들이 슈링크플레이션을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라고요.

그런데 인지편향(높이와 가격이 눈에 더 띔)과 정보마찰(단위 가격 변화를 인식 못함)로 인해 구매가 줄지 않는다고 해서, 그 소비자가 그걸 실제 용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슈링크플레이션 혐오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라몬율대학교의 이오아니스 에반젤리디스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인데요.

가격 인상은 싫다. 그런데 슈링크플레이션은 더 싫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꼼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에반젤리디스 교수는 소비자들에게 가격인상(용량은 그대로)과 용량 감소(가격은 그대로), 두 가지 상황을 주고, 각각 얼마나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다섯 가지 종류의 설문을 거쳤지만 응답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생산비용이 증가해서 제품 가격을 올린 경우’를 두고는 ‘공정하다’고 평가한 응답이 생각보다 많았는데요(대체로 50% 이상). ‘생산비용이 증가해서 제품 크기를 줄인 경우’는 불공정하다는 답변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최대 70%가 불공정하다고 응답). 가격을 올리든, 용량을 줄이든 사실 단위 가격은 똑같이 올랐는데도 말이죠. 명백히 소비자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을 더 싫어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런 슈링크플레이션 혐오 현상이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건 기만적인 행위라는 소비자 믿음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소비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크기를 줄이는 것보단 가격을 올리는 게 정직하죠. 소비자는 제품 크기가 줄어든 걸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서 불공정합니다. 제조사가 ‘이제 감자칩 수가 25% 줄어듭니다’라고 라벨을 붙이진 않잖아요?”


달라지는 용량 표시
잘 모르는 채 당해서, 알고 나면 더 기분 나쁜 게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그래서 이를 연구한 학자 공통된 결론은 이겁니다. 더 이상은 소비자들이 꼼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강화된 규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우유팩 용량이 10%가 줄었다면 ‘단위 가격이 11.1%나 올랐잖아’라고 소비자가 바로 알아채야죠. 비싸진 제품 대신 더 저렴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하고요.

브라질은 제품 용량이 바뀐 경우 포장에 이 사실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브라질의 한 세제 포장지 아래쪽에 ‘새로운 무게 : 4㎏에서 3.8㎏으로’라고 써있다.(왼쪽 사진) 프랑스 까르푸는 지난해 9월부터 공급 가격을 인상한 제품의 경우 선반에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써있는 경고 스티커를 붙여 고객들에게 안내한다. (오른쪽 사진)

이를 위해 브라질에선 2021년 규정을 바꿔 제조사가 용량 변경 사실을 제품 포장에 써넣도록 의무화했고요(변경 뒤 최소 6개월간 공지해야).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는 지난해부터 26개 제품에 대해 용량이 감소한 경우 큼지막한(가로 세로 13㎝) 슈링크플레이션 경고 스티커를 선반에 붙이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내년부터 강화된 용량표시 규제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브라질 모델을 따라가는데요. 식품이나 생활화학제품의 용량이 줄어 단위 가격이 오르면, 변경 내용을 3개월 이상 표시하도록 의무화합니다. 내년부턴 쇼핑할 때 제품 겉면의 용량 표시를 좀더 유심히 살펴보세요.

제품의 크기, 가격 변화를 추적하는 플랫폼도 도움될 겁니다. 일본엔 민간이 운영하는 ‘가격인상비망록’이란 사이트가 있는데요. 과자부터 샴푸까지, 온갖 제품의 가격 인상과 제품 용량 감소와 그 이유를 세세하게 기록해 공개합니다. 모리나가 밀크 캐러멜의 경우 1913년 첫 출시 이후 가격뿐 아니라 한 갑에 몇알이 들어있는지까지 빼곡히 기록돼 있을 정도.

우리나라도 소비자원의 ‘참가격’ 사이트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개편한다는데요. 더 투명한 정보, 더 촘촘한 감시가 과연 수십년째 이어진 ‘같은 가격, 더 작은 초콜릿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인지편향을 극복하는 소비자의 각성도 함께 필요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 입장에선 똑똑한 마케팅 기법입니다. 마치 새로운 패키지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홍보하며 교묘하게 가격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이를 깨닫고, 분노하면서 이젠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세계 각국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 화두입니다. 제품 가격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는 겁니다. 제품 가격을 인상해서 고객을 잃는 것은 막으면서도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입니다.

-사람들이 인지하는 크기가 실제 크기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린 겁니다. 가격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의 강력한 인지편향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수십년 째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품 가격에 대해 용량감소보다 4.6배나 민감합니다.

-하지만 이제 고객들은 슈링크플레이션에 지쳤고, 이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더 투명하게 용량 변동 정보를 표기하도록 규제가 바뀔 테니, 앞으론 좀 달라지길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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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