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의 흑역사/톰 필립스·존 엘리지 지음·홍한결 옮김/352쪽·1만9800원·윌북
인터넷을 보다 보면 세상의 종말이 머잖은 것 같은 때가 있다. 정치 혼란, 경기 침체 등 막막한 문제를 둘러싼 각종 ‘썰’이 난무해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썰의 황금기(?)에 태어난 듯해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음모론이 단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 역사와 패턴에 대해 몰입도 높게 풀어낸다.
책에 따르면 음모론은 중세에도 팽배했다. 부활절 전날 영국의 숲속에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자 ‘유대인이 기독교도 아이들을 살해한다’는 낭설이 유럽 전역에 퍼졌다. 1960, 70년대 미국에선 베트남전, 정계 인사의 암살 등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음모론이 폭발했다. 다만 저자는 “오늘날 인터넷이 보급되며 극단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심화한 양극화는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의식을 키웠다”고 말한다.
일루미나티, 폴 매카트니 사망설 등 세상을 뒤흔든 음모론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며 음모론이 사라지기 힘든 이유를 진화론과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원시 인류는 위험 요소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보다 실존하지 않는 위험을 보는 게 유리했다”며 “음모론은 세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욕구를 충족해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음모론자가 단지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이 아닌 ‘우리’ 모두일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예컨대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은 ‘케네디 암살 음모론을 믿는 모임’을 창설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