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시작한 美 운동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자신의 이야기 당당히 드러내며, 상처 치유-세상 바꾸는 계기로 ◇해방/타라나 버크 지음·김진원 옮김/344쪽·1만8800원·디플롯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김진주 지음/320쪽·1만8000원·얼룩소
2017년 11월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왼쪽에서 네 번째)가 미국 할리우드에서 열린 ‘미투 생존자들의 행진’에서 미투 해시태그가 붙은 현수막을 들고 걷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짐을 짊어졌다.”
2005년 ‘미투(Me too)’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인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신간 ‘해방’에서 생애 첫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버크는 자신이 ‘밖에서 놀 때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신간은 버크가 미투 운동에 이르게 된 인생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 해시태그가 사용됐다. 이 운동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죄책감은 침묵을 깬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활동가가 된 버크는 캠프에서 열두 살 소녀 헤븐을 만난다. 헤븐은 버크에게 자신이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버크는 어렸을 적 자신을 닮은 헤븐을 외면한다.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는 버크에게 여전히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을 후회하던 그는 흑인 공동체 지도자들이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묵인하는 상황을 목격하곤 각성한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허겁지겁 수첩을 꺼낸 뒤 두 음절을 적는다. ‘Me too.’
신간은 ‘피해자의 말하기’가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책하며 자신의 잘못을 곱씹는 대신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해자의 잘못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폭력과 맞서며 내면을 다듬어가는 버크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필명)가 자신의 유튜브 ‘피해자를 구하자’에 출연한 모습. 그는 신간에 자신의 치열했던 법정 투쟁기를 담았다. 유튜브 화면 캡처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외된 성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을 언론에 알린다. 또 1000쪽이 넘는 재판기록을 직접 뒤져 성범죄 정황을 발견한다. 결국 ‘살인미수’만 적용돼 12년에 그쳤던 1심 형량은 항소심에서 ‘강간 및 살인미수’로 변경돼 2심에서 20년으로 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사실 그의 말대로 위축되어야 할 인물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김진주가 더 이상 ‘색채로운’ 피해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든 “내가 범죄를 당한다면 김진주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교과서처럼 집어 들 것 같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