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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살기 위해서 달렸죠…이젠 ‘서브스리’에 도전합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4-03-09 12:00:00


김현호 매일홀딩스 홍보팀 차장(42)은 2018년 11월 궤양성대장염인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그해 여름 복통이 계속되며 혈변까지 보게 돼 건강검진을 받았고 결국 서울대병원에 갔더니 크론병이었다. 크론병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 기관에 걸쳐 발생한다. 과민성 장증후군, 궤양성 대장염과 증상은 비슷하지만 염증이 장 전체에 침범하며 설사, 복통, 체중 감소, 혈변 등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

김현호 매일홀딩스 차장이 2019년 3월 열린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그는 2018년 크론병을 극복하기 위해 달리기에 집중해 지금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서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에 도전하는 건각이 됐다. 김현호 차장 제공

“당시 많을 땐 하루 열 번도 넘게 화장실을 갔어요. 피가 하도 많이 나와 ‘이러다 죽는 것 아냐’ 하며 변기를 붙잡고 울기도 했습니다. 새빨갛게 피로 물든 변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 아들이 눈에 밟혔고 아내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비 오는 서울 중랑천을 혼자 달리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달리면서 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 ‘싸워 이기겠다’, ‘더 강해지겠다’라는 마음을 먹었죠. 지금까지의 생활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20대부터 가까이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김 차장은 2018년 4월부터 온라인 마라톤동호회 ‘휴먼레이스’(휴레)에 가입해 달리고 있었다. “주말에 농구동호회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주 1회 5~10km를 달렸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크론병에 진단을 받았고, 살기 위해 달리기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서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의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미만 기록)’에 도전하는 건각으로 변신했다.

김현호 차장이 질주하고 있다. 김현호 차장 제공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라톤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2019년 3월 열린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에 도전했고 4시간 2분에 완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풀코스 완주한 것도 기뻤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3시간대도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 차장은 2019년 10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46분에 완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2020년부터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졌다. 실내 및 일부 실외 스포츠 시설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마라톤 대회도 취소됐다. 산은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도 비대면 버추얼레이스로 풀코스를 6번 완주했다.

김현호 차장이 산을 달리고 있다. 김현호 차장 제공

2020년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종주 트레일러닝 약 45km를 11시간에 완주했다. 2011년 5월엔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달리기) 약 48km를 11시간 45분에 달렸다. 이후 북한산둘레길 65km(10시간),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105km(32시간 54분), 거제지맥 100km 트레일러닝(26시간 5분), 트렌스제주 100km 트레일러닝(20시간 20분) 등을 달렸다.

“도로와 산이 주는 느낌이 아주 달라요. 물론 산이 주는 풍광이 좋기도 하지만 산을 달릴 때 몸이 느끼는 게 달라요. 일단 달릴 때 쓰는 근육이 완전히 다르죠. 그리고 산은 오르막에선 천천히 걸으면서 쉴 수도 있어요. 일종의 회복 구간이죠. 운동의 강약이 확실하게 나눠집니다. 도로는 일정한 스피드를 유지하며 쉼 없이 계속 달려야 합니다. 그래도 도로를 달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김현호 차장이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출전해 달리고 있다. 김현호 차장 제공

“서울대병원 암센터를 다니며 꾸준히 관리해 크론병은 호전됐습니다. 당시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로 회복이 빨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약이 잘 받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전 약효도 있지만 운동의 효과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더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 병은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 아직도 주기적으로 검진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관리하다 보니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몸 상태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도로마라톤 대회도 다시 시작됐다. 김 차장은 2022년 11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19분에 완주했다. 지난해 11월엔 3시간 32초, 딱 33초 차로 서브스리를 달성하지 못했다. 김 차장은 3월 17일 열리는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에서 첫 ‘서브스리’에 도전한다. 그는 “준비 많이 했다”며 기록 달성을 자신했다.

김현호 차장이 육상 트랙을 달리고 있다. 김현호 차장 제공

김 차장의 하루는 새벽 5시 30분에 시작한다. 기상해 6시부터 1시간을 달리거나 수영을 한다. 주 3회(월 수 금) 수영을 하는데 수영 안하는 날엔 달린다. 그리고 출근해 점심때 약속이 없으면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달리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퇴근해 아이들을 돌본 뒤 오후 10시부터 역시 1시간 달리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그는 “오래 달리려면 근육이 조화롭게 발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21년 생활스포츠지도사 보디빌딩 자격증도 땄다. “근육 키우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 정말 부상 없이 평생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기준으로 달리기 약 300km, 수영 10시간, 웨이트트레이닝 10시간의 운동을 하고 있다.

“전 달리는 게 좋습니다. 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두려울 때, 심심할 때… 아무 때나 달립니다. 달리면 모든 고민이 사라집니다. 복잡했던 것들이 풀립니다. 달리는 게 삶 그 자체입니다. 그 느낌 아세요? 우주와 하나 되는… 깊은 밤 아무도 없는 강변을 달리면 별과 달, 그리고 나밖에 없습니다.”

김현호 차장이 지난해 1월 찍은 보디프로필 사진. 김현호 차장 제공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주로 아파트 및 회사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달리지만 한강과 중랑천 등 강변을 비롯해 각 지역 운동장도 찾아 달린다. 남산 북한산 등 수도권 산도 달린다. 그는 당당히 “난 운동 중독자 맞다”고 말한다. 그는 “달리며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지난해 1월엔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
“함께 운동하던 퍼스널트레이너가 ‘달리기를 좋아기 때문에 몸만들기 유리하다’고 해서 해봤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달리기로 체지방을 쫙 뺀 상태에서 근육을 만드니 몸이 괜찮았습니다. 뭐 제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해봤는데 의미 있는 이벤트였습니다.”

운동은 그에게 좋은 변화를 줬다. 건강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에서도 ‘달리기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그는 “고교 친구들이 저를 따라 달리기 시작해 풀코스까지 완주했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한 고교모임 10명 중 5명이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친구들이 ‘네가 그렇게 건강해진 걸 보니 달리고 싶다’고 하며 달렸다”고 했다. 회사 거래처 등 일로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달리기 모임을 만들어 월 1회 함께 만나서 달린다. 그는 “제가 술은 줄였지만 이제 달리기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했다.

김현호 차장(오른쪽에서 여덟 번째)이 휴먼레이스 의정부 지역 회원들하고 포즈를 취했다.

‘옥수수러닝클럽’이 일로 만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달리는 동호회다. 김 차장은 휴레 의정부지역 크루장을 맡고 있고, 회사 마라톤동호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회사의 다양한 건강 지원 프로그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내 금연프로그램에 참여해 담배를 끊으면서 건강 지원금을 받았고, 사내 걷기왕 다이어트 챌린지에서도 1등해 상금과 상품을 받았다. 그는 “매일유업에는 10개 종목의 운동 동호회가 있고 회사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 차장은 “평생 달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마라톤 선수 출신들이 지도하는 ‘오픈케어스쿨’에서 자세 교정도 받고 있다. 자세가 좋아야 부상 없이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강하게 달리는 법을 전수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현호 차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매일유럽 마라톤동호회 회원들하고 포즈를 취했다. 김현호 차장 제공

“아프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제가 살아있는 것에, 남은 시간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 응원해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건강한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함께 달리자고도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도록 돕고 싶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