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법원, 美인도 번복 “인도 요청, 韓이 美보다 사흘 빨라” 현지 검찰 항소-장관 승인 변수 남아 일부 피해자 “100년형 가능한 美 가야”
지난해 6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서 짧은 머리를 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왼쪽)가 위조 여권 사용 등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 가고 있다. 7일(현지 시간)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몬테네그로 법원이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3)를 미국으로 인도한다는 기존 판결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유럽 현지 매체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최신 반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과 한국의 송환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몬테네그로 검찰이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이 있으며, 권 씨를 미국으로 인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했던 법무장관의 최종 승인 절차도 남아 있다. 미국 법무부도 법원의 결정에 “권 씨의 미국 인도를 재추진하겠다”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50조 원 이상의 투자 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추산되는 권 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면 한국 피해자들이 미국에 앞서 보상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다. 다만 일부 국내 피해자는 국내의 ‘솜방망이 처벌’을 우려해 차라리 100년 이상의 중형이 가능한 미국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 법원 “韓, 美보다 인도 요청 빨라”
이번 결정은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5일 권 씨 측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기존 ‘미국 인도’ 결정을 무효화하고 재심리를 명한 데 따른 조치다. 항소법원은 당시 재심리를 명하며 “한국 법무부가 지난해 3월 24일 영문 e메일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미국보다 사흘 빨랐다”고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미 정부가 3월 23일 법원에 공문을 보내긴 했지만 권 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27일 요청한 공문이 정식 인도 요청이라고 본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24일 요청하며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첨부했다고 봤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결정에 대해 “권 씨의 법적 여정 중 최신 반전”이라고 평가했다.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미국 인도 필요성을 시사한 만큼 항소법원이 고등법원의 미국 인도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권 씨의 변호사 고란 로디치 씨는 “이달 말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인한 형기를 마치면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전했다.
● “법무부 장관 최종 승인 미지수”
하지만 권 씨의 한국 송환을 확정이라 보긴 아직 어렵다. 검찰이 법원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자 라코비치 법원 대변인도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한 권 씨를 곧 인도할 수 있다”고 했다. 몬테네그로 법무장관의 최종 승인 여부도 변수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장관은 그간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 정책 파트너”라며 미국행에 무게를 뒀다. 블룸버그통신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작은 발칸반도 국가(몬테네그로)가 직면한 지정학적 상황으로 미국 인도가 선호되고 있다”며 “몬테네그로 정부가 관련 조치를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도 7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관련 국제·양자 간 협약과 몬테네그로 법에 따라 권(도형)의 인도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며 인도 추진 방침을 밝혔다.
권 씨의 한국 송환이 최종 결정되면 한국 피해자들은 미국보다 먼저 구제를 받을 길이 열린다. 하지만 국내 피해자 모임은 이날 성명에서 “권도형은 국내 정상급 로펌에 천문학적 수임료를 지급하고 코인사기 범죄에 면죄부를 받고자 한다”며 “제대로 처벌받을 미국으로 보내지는 게 피해자들이 바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혔다.
검찰도 권 씨에 대한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현재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에서 맡고 있는데, 권 씨가 입국하는 대로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겠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권 씨와 함께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가 지난달 6일 국내로 송환된 측근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38)는 송환 당일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송돼 조사를 받았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