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51
▶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의 사진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오늘은 아주 짧은 글입니다.
1924년 3월 3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건물 앞에 두루마기와 흰 치마를 입은 조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카메라를 가리고 있는 다른 건물이 없는 거로 봐선 큰 대로변에 있는 건물입니다. 사진 속 사람들 시선의 방향이 모두 한쪽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 거로 보아 어떤 사람은 뭔가를 구경하는 거고 어떤 사람은 차를 기다리거나 뭔가 자기 일을 하러 나왔다가 사진에 찍힌 것 같습니다. 설명을 보니 서울 시내에 불이 났습니다.
◇ 황금정 불탄 자리 / 1924년 3월 3일자 동아일보 DB
어제 2일 오전 4시 20분경에 시내 황금정 이정목 중국인 부호 담정림 경영의 ‘미가도’자동차부에서 불이 나서 자동차 9대 가격 5만원 어치, 부속품 전부 가격 7500원 어치, 2층 벽돌집 한 채 2만원 어치, 도합 8만원 어치가 전소되고, 5시 4분에 출동한 시내 각 소방대의 진력으로 진화는 되었으나 휘발류가 많이 있는 자동차부라 화염은 걷잡을 새없이 붙어 올라 이층에서 자던 일곱 사람 중에서 일일 낮에 인천에서 다니러 왔다가 자게 되었든 인천 본정 인천자동차상회 운전수 리상호는 마침내 몸을 피할 틈이 없어서 참혹히 타죽고 말았다는 데 원인은 아직 불명이요 집과 자동차는 전부 화재보험에 붙이었음으로 불원(不遠)에 다시 회복되여 영업을 계속 하리라더라.
▶ 황금정이면 지금의 을지로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담정림’이라는 이름의 중국인 부자가 운영하는 자동차 회사에 화재가 발생했네요. 불이 난 지 45분 만에 시내 여기저기서 출동한 소방관들이 진화했지만 자동차 9대, 부품, 건물 피해액이 8만원에 달하고,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2층에서 잠을 자던 7명 중에서 전날 인천에서 서울 본사로 출장을 왔던, 운전기사 이상호씨 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집과 자동차가 모두 화재보험에 들어 있어서 멀지 않은 시기에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 저 사진의 1년 전인 1923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 지면을 [백년 사진]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의 충무로 일본인 상가 밀집 지역의 화재였는데 상가 30채가 전소되고 12채가 반소된 피해였습니다. 당시 피해 추산 액은 5만원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번사진 속 화재 현장은 중국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양옥 건물인데, 2층 건물 한 채만 2만원의 수리비와 자동차와 부품 값이 6만원인 거로 봐선 꽤 큰 화재 사건이었습니다.
▶ 사진 설명을 통해 자동차 한 대 가격이 백 년 전에 약 5600원 정도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기사나 광고를 보면 당시 단행본 책값이 1원, 독일제 수입 안경이 3원 정도했었습니다. 지금의 물가와 비교해보면 자동차의 품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값이 엄청나게 비싼 정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가도’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검색을 통해서도 더 이상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 흥미로운 점은, 이 당시에 화재보험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멀지 않은 시기에 영업을 재개한다고 신문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와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보험 역사를 살펴보니,
1891.01월
일본보험회사인 ‘제국생명’이 우리나라에 최초의 지점(부산지점) 개설
1921.01월
우리나라 최초의 손해보험회사인 ‘조선화재해상보험㈜’ 설립
조선손해보험협회 설립 (조선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서울화재)
등의 연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궁금한 점이 또 있습니다. 저 당시 사망한 인천 운전기사에 대해서는 배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인 사업가가 들었다는 보험의 배상 범위는 어디까지였을까요? 오늘은 100년 전 서울 을지로의 자동차 공장에 난 화재 사건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 시대의 기록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사실을 제공해 줍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