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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뚱뚱?…야구 트레이너의 ‘전설’ 김용일 코치의 생각은[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03-10 12:00:00


김용일 프로야구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수십 년 운동으로 단련되 팔뚝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시작은 트레이너였다. 10여 년이 지난 뒤 트레이닝 코치가 됐다. 다시 10여 년이 흘러 지금은 수석 트레이닝 코치로 불린다.

1989년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전신 MBC 청룡에서 트레이너로 시작해 36년째 야구계에 몸담고 있는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58)는 야구 트레이닝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프로야구 10개 팀들은 각각 10여 명 안팎의 트레이닝(또는 컨디셔닝) 코치들을 고용하고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트레이너 두세 명이 한 팀 선수단 전체를 책임졌지만 트레이닝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트레이닝 파트의 인원도 크게 늘었다.

그중 ‘수석’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은 김 코치가 유일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매년 ‘베이스볼 다이어리’를 발간하는데 LG 코칭스태프 명단에 김 코치는 염경엽 감독, 김정준 수석코치에 이어 3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장 선수단 ‘넘버 3’라는 의미다.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서울 잠실야구장 내 웨이트 시설 에서 덤벨을 앞에 두고 운동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지난해 LG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상 등극 후 차명석 LG 단장은 “이번 우승 과정에서 가장 고마운 분은 김용일 코치”라고 말했다. 김 코치가 총괄한 트레이닝 파트가 선수들의 몸 관리를 잘해준 덕분에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며 우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코치는 LG 창단 첫해인 1990년과 4년 뒤인 1994년에 이어 지난해 우승까지 LG의 세 차례 우승을 모두 함께 했다. 세 번 모두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현장을 지킨 사람은 김 코치가 유일하다.

김 코치는 2000년부터 2008년까지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3차례(2000년, 2003년, 2004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가 한국 프로야구 제1호 ‘트레이닝 코치’가 된 것도 2003년 현대에서였다. 2019년에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에서 뛰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현 한화)의 개인 트레이너로 1년간 미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2020년 수석 트레이닝 코치 직함을 달고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한국시리즈 후드 티를 입고 운동을 하고 있는 김용일 코치. 동아일보 DB

김 코치는 원래 양궁 선수 출신이다. 양궁 명문교인 예천중에 다닐 때 소년체전에서 우승도 했던 유망주였다. 이후 양궁 특기생으로 경북체고와 안동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고교 3학년 때 체조 수업 도중 백 플립을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다. 결국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학교 1학년 때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부상으로 아쉽게 선수 생활을 끝낸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트레이너의 길을 택했다. 운동처방사 자격을 땄고, 응급처치와 스포츠마사지도 익혔다. 혹시 쓸 일이 있을지 몰라 침술까지 배웠다. 1990년 시즌이 끝난 뒤엔 자비를 들여 일본 트레이닝 시설에 연수도 다녀왔다.

지금도 그는 LG 야구단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선수들이 모두 떠난 뒤 가장 늦게 퇴근한다. 지난해 시즌이 끝난 후에도 딱 하루만 쉬고 다시 야구장에 나왔다. 선수들에게 비시즌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주기 위해서였다.

일과 시간에는 선수들의 운동을 돕지만 김 코치 자신도 없는 시간을 쪼개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1년 365일 중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날을 빼곤 매일 운동을 한다는 그는 “내게 운동은 곧 생활이다. 1년에 닷새 빼고 360일은 운동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프로야구는 대개 야간에 열리기 때문에 선수단 대부분은 오후에 출근한다. 하지만 그는 오전 10시경 일찌감치 야구장에 나온다. 트레드밀에서 약 30분간 빠른 걸음으로 몸을 예열한 뒤 이후 약 30분간 본격적인 근력 운동을 한다. 상체 운동은 이두와 삼두 운동, 등 운동, 코어 운동을 돌아가면서 한다. 하체 운동은 맨몸 스쾃을 시작으로 서서히 중량을 높여가며 스쾃과 데드리프트를 주로 한다. 원정 경기를 가서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숙소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잠깐이라도 운동을 한다.

류현진(왼쪽)과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 류현진은 LA 다저스 시절 비시즌에 종종 김 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김용일 코치 제공

김 코치가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이유는 선수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들은 누운 자세에서 엉덩이 부위를 들어 올리는 브릿지 운동은 많이 한다. 일반인들은 대개 맨몸으로 하지만 선수들은 수십 kg짜리 덤벨을 배 위에 올려놓고 브릿지 동작을 한다. 무거운 덤벨을 선수 몸에 올려주는 건 트레이닝 코치의 몫이다. 이왕이면 한 번에 번쩍 들어서 가볍게 얹어줘야 한다. 김 코치는 “한 팔로 54kg 짜리 덤벨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는 몸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두 팔로 낑낑거리면서 덤벨을 들면 선수들 보기에 창피하지 않나. 지난 겨울에는 60kg짜리 덤벨도 사 놨다”며 웃었다.

일반인들 중에는 야구 선수들은 운동선수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뚱뚱한 몸으로 던지고 치는 선수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코치는 “배 나온 선수가 있는 것 맞다. 하지만 야구는 지구력을 요하는 종목이 아니다. 타자가 치고, 투수가 던지는 동작은 대개 1초 안에 순간적인 힘으로 이뤄진다”며 “바로 그 순간 파워를 내기 위해서는 하체와 엉덩이 근력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육상 100m를 뛰는 스프린터나 투포환 선수 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지구력은 없을지 몰라도 근력은 어느 종목 운동 선수 못지않다”고 말했다.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덤벨 운동을 하고 있다. 김용일 코치 제공

그가 꼽은 야구 선수로서 이상적인 몸을 갖고 있는 선수는 류현진이다. 류현진은 큰 덩치 때문에 팬들 사이에선 ‘류뚱’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김 코치가 보는 류현진은 허벅지와 엉덩이, 장딴지 등 하체의 힘과 근육이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다. 김 코치는 “상체를 많이 쓰는 타자들과 달리 투수들은 하체가 강한 선수가 많다. 하지만 (류)현진이는 하체 뿐 상체도 좋다. 덤벨 프레스를 할 때 한 팔로 35kg를 가볍게 든다. 야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류현진은 2010년대 중반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받고 국내에 들어왔을 때 김 코치와 함께 훈련했다. 2019년에는 전담 트레이닝 코치를 맡았던 그는 “3년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건 (류)현진이는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하루 4시간 트레이닝을 하기로 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지켰다. 괜히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LG 선수단 중에서는 “타고난 몸은 오지환, 만들어진 몸은 김현수”라고 평했다. 그는 “(오)지환이의 하체를 보면 정말 선천적으로 좋은 몸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관리까지 잘하니 다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현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트레이닝에 진심인 선수다. 입단 당시 다소 왜소했던 몸이 이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고 우람해졌다”고 말했다.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가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휴식일에 그랜드 캐년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용일 코치 제공

김 코치는 운동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짧게’ 그리고 ‘자주’ 근력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주변 분들을 보면 피트니스센터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다. 운동 효율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반인을 기준으로 중량 운동은 하루 15~20분만 해도 충분하다. 짧게 하되 자주 운동을 하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코치는 “많은 분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서 본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있거나 무릎 등이 좋지 않은 분들도 그렇게 한다”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불편함을 안고 정석으로 하기보다는 몸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스쾃을 할 때도 완전히 주저앉는 대신 자신이 버틸 수 있는 각도까지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플랭크 동작도 마찬가지다. 굳이 바닥에서 정석대로 플랭크 동작을 하는 대신 벤치 등을 이용해 팔꿈치를 대면 몸에 많은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는 “몸이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중량 운동도 무거운 무게를 들기보다는 가벼운 무게를 더 많이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