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장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고에 관한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어제 출국했다.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6일, 출국금지가 해제된 지 이틀 만이다. 출국금지 상태였던 이 전 장관을 해외 공관장으로 임명하고, 속전속결로 출국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공수처가 수사상의 필요로 출국을 막아놓은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대통령실의 인사부터가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대통령실은 독립적 수사기관인 공수처에 출국금지 여부를 물어볼 수 없어서 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이 채 상병 사고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물로 오래전부터 지목돼온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을 대사에 앉힌 것부터 상식 밖의 일이었다.
공수처의 조치도 석연치 않다. 이 전 장관이 5일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며 이의신청을 하자 공수처는 이틀 뒤 이 전 장관을 불러 4시간 동안 약식조사를 했다. 다른 관련자들을 먼저 조사한 뒤 외압 의혹 연루자 중 최고위직인 이 전 장관을 소환하는 것이 통상의 수사 절차인데, 이번에는 거꾸로 된 셈이다. 출국금지 해제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 조사를 서둘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은 사고 수사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은 투명한 수사를 통해서 결론을 내야 할 일이다. 이 전 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지도 의문인 데다, 그런 수사를 통해 내놓은 결과를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는가. 호주 대사 임명부터, 약식조사, 출국금지 해제, 전격 출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