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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도 잡았다… 판 커지는 OTT 중계[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4-03-11 23:39:00

OTT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스포츠는 흥행 보장 저위험 상품
본방사수 고집하는 팬들 많아… OTT-리그 ‘윈윈’ 선순환 가능
팬덤 이해 못하면 낭패볼 수도… 실수연발 티빙 ‘개막 땐 다를 것’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프로야구 시범경기 중계 화면. 2026년까지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을 독점하는 대가로 1350억 원(연평균 450억 원)을 지불한 티빙은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프로야구 중계가 자체 제작 대형 콘텐츠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티빙 홈페이지 캡처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 시장에 처음 뛰어든 건 2006년이었다. 네이버는 2019년에도 카카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와 ‘통신-포털 컨소시엄’을 꾸려 5년 총액 1100억 원(연평균 220억 원)에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을 따냈다. 그 덕에 프로야구 팬들은 18년 동안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프로야구 중계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 가입해야 PC나 스마트폰 등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가장 낮은 가격 상품에 가입해도 한 달에 5500원을 내야 한다. 다만 다음 달 30일까지는 구독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본격적인 유료화는 5월부터 시작이다.》



티빙은 뉴미디어 중계권을 따내는 조건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2024∼2026년 3년간 1350억 원(연평균 450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직전 계약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통신-포털 컨소시엄 역시 이번 중계권 경쟁 입찰에 참여했지만 ‘머니 게임’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티빙이 그만큼 프로야구 중계에 작정하고 달려든 것이다.

프로축구 온라인 중계권도 지난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OTT인 ‘쿠팡플레이’로 넘어갔다. 쿠팡플레이는 이번 시즌부터 라리가(스페인) 경기를 국내에 독점 중계하고 있으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 경기와 분데스리가(독일) 중계권도 확보했다. 축구뿐만이 아니다. 쿠팡플레이는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데이비스컵(테니스), 포뮬러원(F1) 등의 국내 중계권자이기도 하다. 20,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중계도 쿠팡플레이가 맡는다.

쿠팡플레이는 스포츠 중계를 발판으로 지난해 8월부터 티빙을 제치고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국내 1위(800만 명)로 올라섰다. 그런 점에서 티빙이 프로야구 중계권을 따낸 건 ‘이운제운(以運制運·스포츠로 스포츠를 물리친다)’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가 OTT 업계 판도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 로 리스크, 하이 리턴

기본적으로 스포츠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1933년 시카고 엑스포를 앞두고 모객(募客)이 급했던 조직위원회는 MLB 사무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세상에 등장한 개념이 올스타전이다. 21세기에도 스포츠만 한 ‘미끼 상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스포츠는 못하면 못하는 대로 욕하면서 보고, 잘하면 잘하는 대로 응원하면서 보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포츠 콘텐츠는 드라마나 영화처럼 폭삭 망할 위험이 거의 없다. 이전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자였던 통신-포털 컨소시엄은 계약 기간 5년 동안 약 3600경기를 생중계했다. 이 기간 누적 시청자 수는 8억 명, 하이라이트 영상 조회수는 70억 회에 달했다.

스포츠는 또 ‘본방 사수’에 특화된 콘텐츠이기도 하다. 스포츠 콘텐츠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스포츠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는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도 이탈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프로야구 팬들은 이닝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광고가 따라붙는 구독 모델에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프로야구는 ‘가격 대비 성능’도 좋다. 프로야구는 1년에 정규시즌 경기만 720경기를 치른다. 티빙이 1년에 450억 원을 투자했으니 경기당 6250만 원을 쓰는 셈이 된다.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는 데는 지난해 기준으로 3시간 12분이 걸렸다. 1분짜리 영상 제작에 33만 원이면 충분하다. 반면 세계 1위 OTT 업체 넷플릭스가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만드는 데는 1분에 약 5950만 원이 들었다.

그렇다고 스포츠가 OTT에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는 건 아니다. 티빙이 KBO에 지급한 450억 원은 프로야구 10개 구단에 45억 원씩 돌아간다. 지난해까지는 각 구단 몫이 22억 원이었는데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23억 원은 스프링캠프를 두 번 다녀올 수 있는 돈이다.

각 프로야구 구단은 경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반기고 있다. 통신-포털 컨소시엄은 프로야구 경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원천 봉쇄했다. 이 제약 때문에 각 구단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경기 장면을 쓸 수 없었다. 그 바람에 프로야구 팀 유튜브 채널은 모객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로야구 팀 가운데 인기가 가장 많은 한화도 구독자가 2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40초 미만 영상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 “2루에서 SAVE”
OTT 업체가 스포츠 중계를 통해 성장하려면 팬덤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쿠팡플레이는 AFC 카타르 아시안컵(1월 13일∼2월 11일) 때 한국이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하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라는 노랫말로 된 김광진의 ‘편지’를 고르는 등 경기 결과에 어울리는 엔딩곡을 선정해 팬들로부터 찬사를 들었다.

반면 9, 10일 프로야구 시범경기에 나선 티빙은 ‘기본조차 모른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타석에 타자가 들어섰을 때는 타순 대신 ‘22번 타자’라고 등번호를 썼고, 세이프(safe) 판정 때도 ‘세이브’(save)라고 자막을 잘못 달았다. 홈인을 ‘홈런’이라고 쓰거나 희생 플라이(fly)를 ‘희생 플레이(play)’라고 쓴 실수도 눈에 띄었다.

영상 정렬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프로야구 영상은 기본적으로 어떤 경기인지, 영상에 등장한 선수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제목을 달아야 한다. 그러나 티빙은 다른 시리즈처럼 1화, 2화, 3화… 식으로 제목을 붙였다.

티빙은 “야구 팬들의 지적에 대해 조치를 진행 중이다. 정규시즌 개막(23일)에 앞서 야구 팬들 만족도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티빙은 정규시즌 개막전부터는 전 경기 하이라이트, 전체 경기 다시 보기뿐만 아니라 10개 구단 ‘정주행 채널’, 놓친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타임머신’ 기능, 채팅 기능인 ‘티빙 톡’ 등의 부가 기능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 성공의 조건
미국 과학기술 전문지 ‘와이어드’를 설립한 케빈 켈리는 “창작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팬 1000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창작자가 만드는 콘텐츠에 연간 100달러(약 13만 원)를 쓰겠다는 팬 1000명이 있다면 해마다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켈리는 “진정한 팬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무엇이든 살 사람이다. 당신이 노래하는 걸 보러 300km를 달려올 수 있고, 양장본이든 종이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살 것이다. 이런 팬 1000명만 있으면 억만장자까지는 아니라도 먹고살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프로야구는 ‘진정한 팬’이 차고 넘치는 리그다. 프로야구 팬 사이에서 응원팀 경기를 보러 300km를 달려가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데 구단이 제대로 된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리그에서 1년에 6만6000원(월 5500원)이 부담스러워 ‘야구를 끊겠다’는 선언이 줄을 이을 확률은 사실상 제로(0)다.

그렇다고 프로야구 팬들이 ‘야구만 볼 수 있으면 나머지는 어찌 되든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티빙이 시범경기 때 저지른 시행착오를 빨리 끊어내지 못한다면 팬들 반응도 더욱 냉담해질 수밖에 없다. K콘텐츠를 이끌던 미디어 기업이 K스포츠와 손을 잡고 그 선순환을 이끌기 위한 시험대에 섰다.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