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나의 ‘공식적인 장례식’을 얼마 전 마쳤다. 그동안 해온 목공 작품과 드로잉 등으로 부고 기사를 뜻하는 ‘오비추어리(Obituary)’라는 전시를 마친 것이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때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품었던 일을 시작했다. 전문 변호사에게 자문해 유언장을 작성한 뒤, 공증 절차까지 마친 것이다. 시신은 의대에 기증하고, 장례식은 필요 없으며, 내가 좋아하던 노래와 술을 지정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즐기며 나와의 기억을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아직 큰 질병 없이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내게도 제한된 시간만이 허락됨을 알고 있고, 이를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김호 목수·조직 커뮤니케이션 코치
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시간 이론’을 갖고 있다. 하나는 ‘위스키 이론’으로 묵혀두면 더 좋은 시간이 나중에 올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시간이 나서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반대는 ‘우유 이론’으로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이 서로 다른 ‘유통기한’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늦추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찾는다.
코치로서 기업 신임 대표와 코칭을 시작할 때 내가 늘 하는 질문이 있다. 언젠가 대표 자리를 떠날 때 어떻게 그만두기를 바라는지. 보통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자신이 대표로서 재직하는 동안 이 기업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하루를 잘 보내고 싶다면 누구보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낸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하루를 시작했는지 떠올려 보자. 그는 56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30년 넘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물었다. “만일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고 싶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며칠 동안 반복해서 ‘아니요’라고 답할 경우 그는 일정과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하반기가 되면 기업에서는 내년 사업을 예측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영어로 포캐스트(forecast)라고 한다. 반면 미래 특정 시점을 끝으로 정해본 뒤 현재를 ‘과거’로 돌아보면서 계획을 세우는 방법도 있다. 이를 백캐스트(backcast)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하루를 백캐스트를 하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유언장을 쓴 것도 백캐스트 기법을 내 삶에 적용한 것이었다. 내 삶과 다양한 활동을 어떻게 끝맺고 싶은지를 생각해본 뒤, 그 시점에서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고, 더 이상 미루지 않기 위함이었다. 3월 초 서촌에 위치한 독립서점 텍스트북에서 유언장 쓰기라는 강연을 했을 때 내 발표의 핵심은 유언장이 내 인생 최고의 ‘액션플랜’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끝을 생각하면 현재를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호 목수·조직 커뮤니케이션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