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레포르토보 구치소 모습.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가 우리 국민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장기간 구금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선교사 백모 씨는 올해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기밀을 외국 정보기관에 넘겼다는 혐의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고 지난달 말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갇혀 있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20년 형을 받을 수 있다. 백 씨는 탈북민이나 북한 벌목공 등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백 씨 구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험악해진 한-러 관계와 한층 밀착한 북-러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동안에도 우리 국민이 탈북민 지원활동을 하다가 러시아 당국에 붙잡혀 조사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러시아는 대체로 조사를 마친 뒤 풀어주거나 추방하는 등 조용히 처리했다. 그러던 러시아가 백 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이 러시아 측에 탈북민 지원활동에 대한 단속 강화와 엄정 대처를 요청했을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에는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기 위한 외교적 압박용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간 북한은 포탄과 미사일 등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를 러시아 측에 보냈고, 한국도 미군의 빈 탄약고를 채워주는 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했다. 그런 만큼 러시아가 백 씨를 사실상 인질로 활용하며 한국의 무기 지원을 막기 위한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러시아가 간첩죄를 적용해 한국인을 체포하는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