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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中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 韓, 美와 협의”… 동참 시사

입력 | 2024-03-14 03:00:00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밝혀
美 지속적 압박에 한미관계 고려
美 공급망 다각화-中 반발은 부담




한국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거듭 한국에 “일본과 네덜란드처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압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상황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의지가 강한 데다 전반적인 한미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 요청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에 근거한 것이다. 다만 중국의 거센 반발 또한 예상돼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시에 한국, 대만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의 다각화도 추진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태국과 필리핀을 잇달아 찾아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반발 속에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정인교 본부장 “美와 中 반도체 규제 협의 중”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12일(현지 시간)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그동안 한미 간 협의가 진행돼 온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하기 이르다”고 했다.

그는 “한미 간에는 정기적으로 수출 통제 관련 협의가 있다. 앞으로 통제 수준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는 (미국이) 우리와 긴밀하게 협의해 결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한미 간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참여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한국 고위 관계자가 직접 밝힌 것이다.

정 본부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요청에 따라 중국에 대한 노후 반도체 장비 판매를 중단했다는 보도에 대해 “기업도 미국 정책에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 정책에 주는 시사점도 크다”고 말했다. 사실상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 하이닉스 등 미국에 진출한 각국 반도체 기업에 지원할 보조금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3월 말에는 발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 반도체 업계, 주요 싱크탱크 등 곳곳에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를 막기 위해 한국, 독일, 대만 등의 동맹국 또한 반도체 규제에 동참시켜야 한다는 전방위적 압박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가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최첨단 7nm(나노미터) 반도체를 장착한 스마트폰을 출시하자 “수출 규제의 구멍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동맹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수출통제 강화로 매출 감소에 직면한 미 반도체 업계 또한 바이든 행정부에 “동맹국에도 강력한 수준의 규제 동참을 촉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 美 다각화-中 반발로 한국 부담 커져

한국이 미국의 규제에 동참한다면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의 실적에는 일정 부분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 내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국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미국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정부의 규정을 준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중국 시장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이는 우리만 겪는 문제가 아니고, 중국 경쟁사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 시도, 중국의 거센 반발 등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계속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러몬도 장관은 13일 태국 방콕, 1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미국은 왜 한두 국가(한국, 대만 등)에서 그렇게 많은 반도체를 사들이는가”라며 “이것이 우리가 다각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 사안을 언급하며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추진하는 미국의 정치적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