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천 개의 파랑’ 내달 4~28일 공연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소설이 원작… SF 연극 천착 장한새 연출로 만나 “SF는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의 원천” 145cm 로봇, 신호 받아 동작과 대사… 티켓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석 매진
연극 ‘천 개의 파랑’을 연출한 장한새(왼쪽)와 동명 원작 소설을 쓴 천선란 작가. 장 연출가는 “연습 시작일을 미뤘을 만큼 대본을 고치고 또 고쳤다. 이 따뜻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가장 차가운 감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천 작가는 “도전을 즐기는 내게 공연 제작 제안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호흡을 맞춘다’는 것. 심장박동을 나누고 함께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이다. 차디찬 로봇이 달리는 말의 등에 올라타 호흡을 맞추고 질주의 두근거림을 나눈다면, 그 순간만큼은 로봇에게도 온기가 도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존재가 맞추는 호흡을 담은 연극 ‘천 개의 파랑’이 다음 달 4∼28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천선란 작가의 동명 공상과학(SF) 소설이 원작으로 국립극단이 제작했다. 더는 달리기 힘든 경주마 ‘투데이’, 투데이를 살아있게 하고자 스스로 폐기를 택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그런 콜리를 살리려는 소녀 ‘연재’가 연대하는 과정을 그렸다. 티켓 예매 시작 하루 만에 전 회차 전석 매진된 화제작이다.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장한새 연출가(35)와 천선란 작가(31)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났다.
2016년부터 SF 연극을 꾸준히 다뤄온 장 연출가는 연재와 콜리가 첫눈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봤듯 책 ‘천 개의 파랑’을 읽자마자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SF지만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다분히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먼 미래에나 벌어질 상상으로만 치부한다면 이미 도래한 기계사회에서 기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고 사유되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고 했다.
콜리와 투데이가 대화하지 않고 고삐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호흡을 맞추듯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만으로 상상력을 펼쳐내는 무대예술이다. 천 작가는 “영화화 제안도 받았지만 말과 로봇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런데 연극은 약속으로 이뤄지는 장르이니 가능하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극 중 투데이는 빛으로 형상화돼 콜리의 심장을 표현한다.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무대에 올라 콜리 역을 맡는다. 특별 제작된 145cm 크기 로봇은 조명장치 제어 기술로 신호를 받아 동작과 대사를 실시간으로 소화한다. 배우 김예은이 로봇을 조종하는 동시에 콜리 시각에서의 서술자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는 사실적 재현 대신 ‘콜리의 메모리박스’로서 표현된다. 장 연출가는 “콜리가 각 인물과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에 중점을 뒀다”며 “경마장은 말발굽 소리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투데이의 존재를 통해 감각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이 각자 소설로 연극으로, 있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만 이야기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에게 SF적 상상력이란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의 원천’이다. 장 연출가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반추하듯 세상의 끝을 이야기함으로써 새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천 작가는 “인류가 사라지고 몇백 년이 흘러 텅 빈 도시를 상상하면 소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 순간 차별과 갈등에 맞서 싸울 힘이 생겨요. 결국 모두 침묵 속에 가라앉을 거라면 지금 더 크게 목소리 내도 되겠다 싶어요. 그게 제가 SF를 사랑하는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