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사기(史記) 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어려서부터 둘도 없는 친한 사이였습니다. 포숙이 섬겼던 소백(小白)은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되었는데, 형인 규(糾)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포숙이 환공에게 진언하여 관중을 죽이지 않고 등용하게 하였지요. 훗날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움을 회고하며 “내가 일찍이 곤궁할 때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갔다가 매번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전장에 나갔다가 모두 패해서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생각거리: 두보의 시 빈교행(貧交行)에서도 ‘손을 제치면 구름 일고 손을 엎으면 비 오니/어지럽고 경박한 세상 어찌 꼭 헤아려야 하나./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의 가난할 때 사귐을/이 도리 지금 사람은 흙처럼 내버리네’라고 하며 관중과 포숙의 진실한 우정을 기리고 있습니다.
한상조 전 청담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