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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스무 개가 부린 ‘마법’[식물의 재발견]

입력 | 2024-03-14 23:30:00



로희 SF 작가

알레르기가 심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는 집먼지진드기가 항원이어서 숲속에 혼자 살지 않는 한 회피할 방법은 없다. 아침마다 콧물과 재채기로 30분은 기본이고, 환절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피부가 뒤집히곤 했다. 소주와 조미료는 나에게 독약이나 마찬가지고.

별별 방법을 다 써보았다. 아로마 오일이 좋대서 향수처럼 쓴 적도 있고, 샴푸가 나쁘대서 노푸(No Poo)족이 돼 보기도 했으며, 병원에서 주사기로 항원 물질을 조금씩 늘려 주입하는 면역요법 치료를 받다가 아나필락시스(면역에 의한 과민반응)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나마 효과를 거둔 것은 요리였다.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먹었더니 피부병이 도지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요리를 시작한 건 새로운 알레르기 치료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서독의 의사들은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더 심한 동독에 아토피 환자가 거의 없어서였다. 학자들은 치밀한 연구 끝에 동독의 풍부한 목초지를 지목했다. 건초 더미에서 자라는 각종 세균과 박테리아들이 알레르기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 아토피는 세균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균이 부족해서 생긴다! 세균 다양성이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특정 세균이 증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숲 유치원이 생긴 이후부터 아토피 환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신선한 요리를 먹으면 대장 내 세균 다양성이 증가해 알레르기가 호전된다.

최근 같이 사는 사람이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두 개쯤 키울 때는 오히려 피부병이 심해지는 듯싶더니 열 개, 스무 개가 되자 거짓말처럼 콧물과 재채기가 사라졌다. 습도, 온도, 향초, 참숯, 흙, 뭘 써 봐도 안 되더니 화분들이 나를 살렸다. 나는 이제 우아한 얼굴로 글을 쓸 수 있다!

SF 작가여서가 아니라 나는 기술에 관심이 많다. 인류가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기술의 방향을 바꾸는 수밖에.

최근에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식물에 다양한 능력을 부여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해양생물의 발광 능력을 삽입하면 식물로 집 안의 조명을 대체할 수 있다. 내가 쓴 소설 ‘나의 섬세하고도 유연한 외계인 애인’에는 어떤 모양으로도 변할 수 있는 식물 ‘움’이 등장한다. 의자가 되어주기도, 침대가 되어주기도, 때로는 격벽이 되어주기도 한다.

자연을 파괴하기는커녕 자연과 공존하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지 않을까.



로희 SF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