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판결 시리즈’ 세 번째 저서 ‘정치적 자유주의’ 관점서 판결 분석 ◇판결 너머 자유/김영란 지음/248쪽·1만8000원·창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한국 최초 여성 대법관 김영란의 ‘판결’ 시리즈 세 번째 책이 출간됐다. 전작 ‘판결과 정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하며 우리 사회의 쟁점을 짚어 왔다. 이번 책 역시 판결 비평이라는 결은 유지한 가운데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그 해석의 토대로 삼는다.
책은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소설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전짓불’(손전등의 불빛)을 들이대며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광경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본다. 특히 뉴 미디어의 시대가 온 지금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은 누구 편이냐?’며 전짓불을 들이대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 등 전통적 사상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적 관념이 강하게 남아 ‘전짓불’의 공포가 그대로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다원사회이니 자기의 목소리를 내라는 시대적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조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도구로 저자는 (유교 사상과 같은) 철학적·도덕적 견해와 독립된 상태에서 사회가 구축한 ‘공적 이성’을 통해 ‘중첩적 합의’에 이르는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답으로 제시한다.
책은 말미에서 ‘땅콩 회항’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을 예로 들면서, 사법 제도 역시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며 사회와 함께 끊임없이 발전하고 공백을 메워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법관이 ‘법을 말하는 입’에 불과하다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법원’으로 남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