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를 서기 위해
과거를 깨끗이 닦아 봉투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동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안홍열(1949∼ )
3월의 대학교 교정은 파릇파릇하다. 초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파릇파릇하다. 새싹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도 낭랑하게 떠드는 것을 듣고 있자면 흐뭇해진다. 화제 중에서도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톤이 높아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는 푸념이라든가 누구한테 관심 있다는 이야기까지, 청춘의 3월은 흥미진진하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