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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무엇으로 성장하나?[동아광장/최인아]

입력 | 2024-03-15 23:48:00

일을 통해 도전-실패-극복-성취-리더십 배워
생계 수단일 뿐 아니라 소중한 성장의 기회
‘밥값 할 일’에 진심인 후보에 총선 한표 줄 것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나는 자영업자다. 강남 선릉 근처에 책방을 열어 8년째 운영 중이다. 책방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던 기억이 난다.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인데 어쩌자고 책방이냐, 나이도 적지 않은데 이제 망하면 만회할 시간이 없다 등 그들의 말은 다 옳았지만 조언을 따르지는 않았다. 귀가 얇고 걱정 많은 나로서는 이례적이었지만 결국 책방을 열어 지금껏 하고 있다. 임대료는 오르는데 책 판매는 줄고 코로나 같은 천재지변도 겪다 보니 걱정이 적지 않지만, 모르고 시작한 일이 아니므로 내 뜻대로 살기 위해 치르는 수고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오프라인 책방을 시작한 걸까. 웬만한 생활의 필요는 터치 한두 번이면 해결되는 디지털 시대에.

29년간의 회사 생활 끝에 퇴직을 결심했을 때 앞으로 내 인생에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스물셋에 시작해 30년 가까이 했던 일은 재미있었고 제법 성과도 올렸다. 반면 그 30년은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생계를 해결하는 시간이기도, 사회인으로서 숙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숙제를 웬만큼 마치니 나이는 오십이 넘어 있었고 그때부터의 시간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싶었다.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배우고 공부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그것이 나의 은퇴 플랜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유인’으로 산 지 2년쯤 지났을 때 내 안에서 뜻밖의 욕구가 올라왔다. ‘다시 일하고 싶다!’ 세상에, 10년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확신을 갖고 감행한 퇴직이었는데 2년 만에 다시 일하고 싶다니….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쓰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아직 할 줄 아는 게 있는데 그걸로 어딘가에 의미 있게 기여하고 싶다는…. 말하자면 그건 자아실현, 성장의 욕구였고 일하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 행복 같은 것들을 다시 내 인생에 불러들이고 싶은 거였다.

꽤 괜찮은 기업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 돈을 벌어야 하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자아실현은 주말에 한다는. 이런 이야기로부터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겐 자아실현 욕구가 있다는 것. 자아실현은 일이 아닌 다른 걸로 하려 한다는 것. 나는 좀 의아하다. 일을 통한 자아실현은 안 되는 걸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하루 8시간씩 꼬박 먹기 힘들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랑도 주 5일 내내 하기 어렵다. 좋든 싫든, 돈 때문이든 다른 것을 위해서든, 우리는 긴 시간 일을 하며 보낸다. 아마도 한세상 사는 동안 가장 오랫동안 하는 것이 일이지 싶다. 게다가 100세 시대다. 수명만 길어지는 게 아니라 일하는 시간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일을 어떤 관점과 태도로 대해야 노력이 흩어지지 않고 쌓여 성장으로 이어질까?

강연을 위해 찾은 기업의 HR(인사) 담당자들로부터 최근엔 기업들도 구성원의 성장을 중요한 화두로 여긴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그렇다면 학교를 졸업한 어른은 어떻게,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어릴 때는 몸이 자라고 키가 크면서 성장한다. 어려운 과목을 배우고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성장한다. 돌아보시라. 어른이 된 당신은 언제 성장한 것 같은가? 도전, 실패, 극복, 성취, 열정, 좌절, 숙련, 노하우, 책임, 갈등, 팀워크, 리더십…. 이런 걸 맛보면서 자란 것 같지 않나? 이것들은 다 어디에 있나? 놀랍게도 이 모두가 일에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일이란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소중한 성장의 기회임에 틀림없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개인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일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일 속에 들어 있는 소중한 기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잿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밥값을 할 것인지’ 고민하시라. 유권자인 나는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하겠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