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모 주일대사 件 떠올리게 한 이종섭 사건 당시엔 각료들이 부결시키는 결기라도 보여 결국 ‘1인’ 의사결정 시스템 문제 아닌지 “나는 옳다”는 신념, 내로남불로 흐를 위험
정용관 논설실장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은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판박이 같다.” 얼마 전 한 원로 법조인의 문자를 받고 이승만 대통령이 그리 총애했다는 신성모 전 국방장관의 주일대사 임명 과정을 찾아봤다. 영국 상선 선장 출신의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이 대통령이 ‘캡틴 신’이라 불렀다는 그의 문제적 삶은 제쳐두자.
6·25 발발 전 “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 등의 호언장담을 늘어놨다는 그는 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거창 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부정 착복 사건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런 그를 이 대통령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일 대표부 대사로 내보내겠다며 국무회의에 안건을 올렸다. 신성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던 터. 안건은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임명은 내가 하는 것”이라며 강행했고, 신성모는 그해 7월 일본 대표부 대사로 부임했다.
신성모 주일대사 임명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책임의 크기, 정치 상황 등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신성모는 군비 착복 등의 중대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휘하 간부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된 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이 부결을 가결로 뒤집는 무리수까지 둔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자의식이 강한’ 완고한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엔 이의를 달기 힘들 것이다.
그의 호주행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민감한 시점에 정치적 이슈의 한복판에 섰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왜 야권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민감한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서둘러 해외로 내보내려 한 건지, 일선 부처의 1급 실장 인사를 놓고도 한두 달씩 검증을 하는 판에 출금 여부조차 알아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혹시라도 기소되면 외교적 망신의 뒷감당은 어찌하려 했는지 하는 점이다. 국방차관, 국가안보실 2차장 등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지휘 선상에 있던 이들이 단수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는 것과 맞물려 “입막음용” 등 온갖 억측이 나돌게 된 배경이다.
‘런종섭’ ‘도주대사’ 등은 망외의 호재를 만난 야권의 자극적 공세, 프레임 씌우기 성격이 짙다. 공수처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거나 도피할 의도를 갖고 출국했다면 모르겠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장군 출신인 그가 그런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 전 장관의 호주행은 개운치 않다. 누군가 전임 대사가 작년 말 정년이라는 보고를 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 이 전 장관을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걸로 짐작할 뿐이다. 굳이 왜 그랬을까. 공수처의 핵심 피의자라는 ‘리스크’는 간과한 건지 무시했는지도 알 수 없다. 대사 임명은 국무회의 심의 의결 사항인데 아무런 논의 절차 없이 무사통과된 건지도 궁금하다.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요소들이 하나둘이 아닌 것이다.
결국 “나는 옳다”는 신념에 찬 ‘1인’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근본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3년 전엔 각료들이 반대의 결기라도 보였는데, 지금은 참모들이나 장관들이 그저 정해진 결정의 집행자나 들러리 역할밖엔 못 하는 것 아닌지…. 그 점에서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고 있다”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있다” “호주와의 국방 협력 적임자다” 등의 반박과 해명은 왜 자신들에겐 그리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느냐의 본질적 의문에 대한 답변으론 미흡하다.
지금은 논쟁의 시기가 아니다. 실질적 합리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까지 복잡하게 얽힌 사안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운운하지 않더라도 내로남불 공세의 덫에서 속히 빠져나올 방도를 찾는 게 급선무다. “공수처가 부르면 언제든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이란 대응으론 이미 번진 불길을 잡기 어렵다. 속히 귀국해 적극적으로 수사를 받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게 불필요한 의혹을 불식시키는 길이다. 선거 유불리 문제를 넘어 공적(公的) 권위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