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盧비하’ 양문석 공천 유지 친노-친문 “黨정체성 부정” 반발
“수습할 수 있는 건 당신 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오른쪽)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논란에 휩싸인 민주당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와 대화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양 후보에게 “지금 수습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다”고 했다. 뉴시스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을 두고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친노·친문 진영이 정면충돌하며 분열 조짐을 보였다. 당내에선 “‘비명횡사’, ‘사천 논란’이 이제 겨우 수습되는 타이밍에 또다시 계파 간 갈등이 터졌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노 전 대통령 비하를 둘러싼 충돌이라 내홍의 골이 훨씬 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번 갈등이 총선 뒤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기 위한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 후보들의) ‘이토 히로부미는 훌륭한 인재’, ‘5·18은 북한국이 개입한 폭동’ 이런 게 막말”이라며 양 후보의 공천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전날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라며 노 전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매국노’라고 표현한 양 후보를 두둔했다. 이해찬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선거 때는 그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대로 가야 한다”며 힘을 실었다.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전날 각각 입장문을 내고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민주당에 몸담은 정치인이 김대중 노무현을 부정한다면 이는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천 유지 방침을 확실히 한 것. 김 선대위원장은 이날 양 후보를 직접 만나 “스스로 결단하라”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했지만, 양 후보는 “사퇴 여부도 당원의 뜻이고 필요하면 전 당원 투표도 감수하겠다”고 했고, 이 대표도 “공천은 최고위가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盧비하 ’ 양문석 놓고…이재명 “욕은 국민권리” 친문 “분노 치밀어”
친명 vs 친노-친문 ‘정체성’ 대결
‘盧 불량품’ 발언에 李 “표현의 자유”
정세균 “모욕-조롱 묵과할수 없어”
김부겸, 梁 만나 사실상 사퇴 요구에… 李 “공천은 최고위가 하는 것” 일축
‘盧 불량품’ 발언에 李 “표현의 자유”
정세균 “모욕-조롱 묵과할수 없어”
김부겸, 梁 만나 사실상 사퇴 요구에… 李 “공천은 최고위가 하는 것” 일축
“민주당에 몸담고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정치인이 김대중 노무현을 부정한다면 이는 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노무현재단 정세균 이사장)
● 李, 주말 내내 양문석 두둔
이 대표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양 후보가 과거 노 전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매국노’ 등으로 비하했다는 논란에 대해 “저잣거리에서 왕을 흉보는 연극을 해도 왕이 잡아가지 않았다. 그게 숨 쉴 공간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부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이날 오전 양 후보를 직접 만나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선거 지휘는 선대위가 하고 공천은 최고위가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선대위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다.
전날에도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라며 양 후보를 옹호했던 이 대표는 15일 심야에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일부 최고위원들의 문제제기에 “정치인이 정치인에 대해 말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취지로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주말 내내 양 후보를 옹호하고 나서면서 징계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해찬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거 때는 그런 것에 흔들리면 안 된다. 그대로 가야 한다”고 이 대표의 결정을 두둔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양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의 글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유가족과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내일 봉하마을을 찾아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후보직 사퇴에 대해서는 “사퇴 여부 또한 당원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필요하면 전 당원 투표도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선 “강성 지지층에게 물어보면 답은 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친명계의 ‘마이 웨이’에 친노와 친문 진영은 주말 내내 들끓었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총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던 인사들이 등장하는 상황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재단이사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전날 입장문에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기에 앞서 노무현의 동지로서 양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선대위원장도 입장문에서 “양문석, 김우영 등 막말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후보들이 있다”며 “당이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원조 친노’인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깊은 슬픔을 느낀다.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친문 진영의 반발도 이어졌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바로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15년 전 가슴속으로 다짐했던 대통령님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이번만큼은 지킬 것”이라고, 윤건영 의원도 “가슴 깊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당 지도부는 부디 민주당의 가치와 명예를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최근 ‘공천 결과 승복’을 내세웠던 친노·친문 진영이 양 후보의 공천을 두고 일제히 반발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총선 이후 펼쳐질 차기 전당대회의 예고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 친문 관계자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인 만큼 차기 전당대회에서도 당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