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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막겠다는 ‘전문인력 지정’의 딜레마

입력 | 2024-03-19 03:00:00

[재계팀의 비즈워치]
보안-법무부서는 “빨리 도입해야”
인사 담당자는 “직원간 분열 불러”




“섣불리 지정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첨단기술 전문인력’으로 누군 지정하고 누구는 안 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고, 지정을 했다가는 기업 안에서 싸움이 날 게 뻔하거든요.”

해외 기술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첨단기술 전문인력 관리’ 제도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18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초 정부가 지난해 말까지 기업마다 전문인력을 지정해 관리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는 이유가 기업 내부의 반발 때문이라는 겁니다.

모든 기술 유출은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그만큼 핵심 인력 관리는 보안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정부의 전문인력 관리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은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비밀 유출 금지, 해외 경쟁사 이직 금지 등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해외 기술 유출이 우려되면 정부에 해당 전문인력의 출입국 정보를 신청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업 내부에선 의견이 갈립니다. 기업의 보안·법무 담당자들은 전문인력을 하루빨리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대기업 노무 담당 변호사는 “직원이 경쟁사로 이직하면 막상 실제로 옮긴 것은 맞는지, 새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이 안 된다”며 “작정하고 거짓말하면 일일이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전문인력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을 우려합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전문인력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할 것이고, 반대로 지정받지 못한 직원은 자신이 저평가 받은 데 불만을 가질 것”이라며 “직원 간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내 첨단 기술을 노린 해외 경쟁사들의 기술 탈취 시도가 갈수록 노골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하루빨리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산업계의 고민을 조율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은 한 번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