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5선 대관식’ 더 강해진 푸틴 “나토와 충돌은 3차대전” 엄포

입력 | 2024-03-19 03:00:00

소련 붕괴뒤 가장 높은 87% 득표율
푸틴 “외부서 러 억제하는건 불가능”… 철권통치-우크라 전쟁 지속 전망
“나발니 세상 떠나, 슬픈일” 첫 언급
앰네스티 “크림 합병뒤 정체성 말살”



푸틴, 승리 연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5선을 확정지은 뒤 수도 모스크바의 선거운동본부를 찾아 운동원들을 배경으로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역대 대선 최고 득표율을 두고 “유권자들이 러시아의 전진에 도움이 될 정치적 통합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17일 치러진 대선에서 77%대 투표율에,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5선 고지에 오르며 더욱 강력한 ‘푸틴의 시대’를 예고했다. 야권 유력 인사의 대선 후보 등록을 막고, 최초로 온라인 투표(원격 전자투표)까지 도입하며 거머쥔 기록이지만 역대 최고 투표율과 득표율로 1인 장기 독재의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승리 확정 직후 연설에서 “유권자들이 러시아가 전진하는 데 도움이 될 정치적 통합을 창출했다”, “강한 러시아, 발전된 러시아를 만들 여건을 만들어줬다”고 자평했다.

푸틴 대통령은 압승에 대한 자신감으로 ‘강한 푸틴’의 면모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직접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 “러-나토 충돌하면 3차 세계대전 온다”

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 대선 전국 투표율은 최종 77.44%로 집계됐다. 1996년 69.81%를 뛰어넘는 러시아 최고 투표율이다. 득표율은 더 압도적이었다. 개표율 99.76% 기준 푸틴 대통령은 87.29%를 득표했다. 스푸트니크통신은 “소련 붕괴 뒤 역대 가장 높은 대선 득표율”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 대선 당시 자신의 득표율(76.7%)도 경신했다.

푸틴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을 통해 철권통치와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한 셈이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한 집권 5기를 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현지 언론 콤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승리 직후 모스크바에 있는 선거운동본부에서 “러시아인의 의지를 외부에서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서방 압박에 대한 수위도 끌어올렸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시사 등으로 인한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 충돌 가능성에 대해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직접 충돌한다면) 본격적인 3차 세계대전과 한층 가까워진다는 건 모두에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위협했다.

지난달 16일 옥중 의문사한 최대 정적(政敵) 알렉세이 나발니의 이름을 사망 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가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항상 슬픈 일”이라며 “나발니 씨”라고 호칭했다. 지금까지는 나발니를 ‘그 사람’ 또는 ‘블로거’로만 지칭했다. 이어 “나발니 씨가 숨지기 전에 러시아를 떠나는 조건으로 서방 감옥의 러시아 죄수와 교환하자는 정부 구성원들이 아닌 동료들의 아이디어에 나는 동의했다”고 말했다. 나발니를 언급하는 게 더는 위협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발언으로 보인다.

● “러 점령지에서 주민 정체성 말살”

서방에선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 길이 열린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 독재자가 또 다른 선거를 치르는 시늉만 했다”고 비꼬았다. 미 인권단체 휴먼라이츠파운데이션의 케이시 미셸 이사는 17일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면 광범위한 전쟁 위협이 임박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이날 강제병합 10년을 맞은 크림반도에서 자행해온 ‘주민 정체성 말살 정책’을 우크라이나 점령지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의 보고서도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AI는 17일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불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러시아 당국이 자포리자와 헤르손, 다른 점령지의 학교에서 자행한 지독한 세뇌와 강요의 증거를 문서화했다”고 밝혔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