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에서 87%의 득표율로 5연임에 성공하자 서방은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선거였다며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친러 성향의 중국과 북한, 인도는 축하의 뜻을 건넸다. 2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생긴 ‘지정학적 단층선’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대선 이튿날인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에 도착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지난달 옥중에서 의문사한 ‘푸틴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사망·학대에 관여한 개인들을 상대로 한 제재를 논의하기 전 러시아 야권이 실종된 이번 선거를 ‘거짓’이라고 성토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회의 시작과 함께 “러시아의 선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거였다”며 이번 선거가 “자국민에 대한 푸틴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보여줬다”고 직격했다.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 러시아의 ‘특별 선거 작전’에 주목했다고 비판했다. 호셉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억압과 협박을 기반으로 치른 선거”라고 꼬집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전날(17일) 대선 출구조사 발표 직후 “푸틴 대통령이 정적들을 투옥하고 (대선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람들의 출마 또한 막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선거는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같은 날 독일 외무부는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러시아의 ‘가짜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기에 그 결과에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푸틴의 통치는 권위주의적이며 검열과 억압, 폭력에 의존한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에서 대선 투표가 강행된 점을 문제 삼았다. 전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엑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는 불법적으로 선거가 치러졌고, 유권자에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독립적 선거감시도 없었다”고 했다. 독일 외무부는 엑스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의 선거는 무효이며 또 다른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고 프랑스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점령지 내 선거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의 주권, 독립, 단결 및 영토 보전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영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 독재자가 또 다른 선거를 모방하고 있다”며 그는 “권력에 병들어 있으며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선거 모방에는 정당성이 없고 있을 수도 없다”며 지난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된 푸틴 대통령을 겨냥해 “이 사람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반면 친러 진영에선 푸틴 대통령의 승리를 축하했다.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날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에서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충분한 지지를 보여줬다”며 “푸틴 대통령이 지도하는 러시아는 반드시 국가 발전건설에 있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중러 관계의 발전을 중시하고 러시아 측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러시아와 “오랜 기간 검증된 특별하고 특권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며 양국 관계 확대를 희망한다고 했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공산당 제1서기는 이번 결과가 “러시아 국민들이 국가 경영을 지지한다는 믿을 만한 증거”라고 추켜세웠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