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세이프 핸즈 포 걸스’ 설립자 자하 두쿠레가 18일(현지시각) 감비아 세레쿤다 의회 밖에서 FGM(여성성기훼손) 금지법 폐기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어린 시절 할례 시술을 당한 후 시민단체를 설립한 두쿠레는 지난 2015년 통과한 여성 할례 금지법을 감비아 의회가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항의하고 나섰다. 2024.03.19. [세레쿤다=AP/뉴시스]
아프리카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할례가 고유문화와 종교적 활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안 최종 통과 시 감비아는 세계 최초로 할례 금지를 철회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유엔 등은 15세 이하 여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여성 할례를 전면 근절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할례를 겪은 여성이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 등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할례가 자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단체들은 고유문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악습이자 여성 폭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 할례 금지는 종교·문화 침해”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현지 시각)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에 전체의원 58명 중 47명이 참석, 42명이 찬성하면서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본회의 투표를 통해 법안은 최종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폐지 법안을 제출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법안은 종교적 충성심, 문화적 규범을 지키는 것을 추구한다.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가 종교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등 폐지 찬성 여론도 큰 편이다. 이날 의회에선 “난 (딸의) 아버지라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며 일부 의원들은 반대 의견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해 할례 금지 법안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이 부과됐는데 한 이슬람교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할례 금지법 폐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앞서 2015년 감비아 의회는 여성 할례 시 벌금 및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실상 제대로 된 단속은 없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감비아의 15~49세 여성의 76%가 할례를 받았다. 세네갈 다카르에 소재한 국제앰네스티의 선임연구원 미셸 에켄은 “여성 할례 금지 조치를 철회한다면 여성 권리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인구 폭발에 공동체 의존성 심화
여성 할례는 성욕을 억제하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정당화돼왔다. 하지만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비위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추후 합병증은 물론 심하면 숨지는 사례도 발생해 각국 정부는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할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화적,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이달 초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할례를 겪은 인구 전체 2억3000만 명 중 아프리카에서만 약 1억4400만 명이 파악됐다. 또 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 8000만 명, 중동 지역에서 600만 명 이상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암리에 관습처럼 행해지는 탓에 실제 사례는 추정치를 더 웃돌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 남미로 넘어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여성 할례가 자행되는 사례가 파악되면서 여성 할례는 세계적 문제가 됐다”고 월드비전이 지적했다.
아울러 수년 간 팬데믹을 비롯해 지속된 세계적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 가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정부보다는 소규모 공동체에 더 의존하는 점도 할례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 등은 “전염병, 기후 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