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 사진(왼쪽). 이 사진은 미국의 7번째 부통령 존 캘훈의 사진을 합성한 조작 사진이다. 필름 겹치기 기법이 쓰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위키미디어 공용
영국 왕실의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가족사진을 조작해 망신을 당했다. 켄싱턴궁은 10일 어머니의 날을 맞아 왕세자빈의 가족사진을 올렸다. 왕실 사진사가 찍은 사진이 아닌 윌리엄 왕세자가 직접 찍었고 포토샵으로 샬럿 공주의 소매 일부, 왕세자빈의 옷의 지퍼 위치 등을 어색하게 조작한 증거가 나왔다. 켄싱턴궁은 바로 다음 날 왕세자빈 명의로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처럼 나도 때때로 편집을 시도해 본다’며 사과글을 올렸다. 문제의 사진은 미들턴이 올해 1월 복부 수술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공개된 사진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최혁중 사진부 차장
164년 전인 1860년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전신 초상 사진’이 대표적이다. 나비넥타이에 긴 트렌치코트 차림의 당당한 정치가 풍모를 보이는 이 사진은 사실 머리는 링컨, 몸은 미국의 7번째 부통령 존 캘훈의 몸을 빌린 ‘합성 사진’이었다.
사진 조작은 정치가와 독재자들의 정치 활동에서 특히 많이 행해졌다. 자신은 드러나고 주위의 ‘불필요한’ 인물들은 사라졌다. 입맛에 맞게 조작된 사진으로 그들의 ‘역사 속 비중’을 더욱 키웠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독일의 유일한 권력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1937년 공표한 사진에 나치의 선전장관인 파울 괴벨스의 모습을 삭제시켰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말을 타고 검을 치켜든 사진에서 조련사가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모습을 없앴다. 1917년 레닌은 노선 갈등을 빚고 스탈린에 숙청된 레온 트로츠키를 뺐다. 스탈린은 레닌의 죽음 직전 마치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처럼 의자에 앉은 레닌 곁에 자신의 사진을 넣었다. 2009년 북한의 김정일은 당시의 건강 이상설을 잠재우기 위해 같은 해 6월 방문한 7보병사단의 시찰 사진을 4월 851부대 방문 사진과 합성시키기도 했다. 조작된 사진은 이렇게 선전·선동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예전 사람들은 사진의 ‘기계적인 자동성’이 곧 사진의 사실성을 담보한다고 믿었다. 사진은 카메라의 ‘광학’과 필름의 ‘화학’이라는 과학이 만든 결과물이기에 그림보다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는 신뢰였다. 하지만 생성형 AI 보정 기술까지 등장하면서 누구든 너무나도 쉽게 사진을 조작할 수 있다. ‘사진이 진실을 기록한다’는 전통적인 믿음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20일 남았다. 후보자들은 27일까지 자신의 선거 벽보(포스터)에 사용할 사진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선관위는 이를 확인한 후 29일 각 지역에서 붙인다. 항상 그렇듯 선거 벽보에는 ‘뽀샵’으로 피부톤을 하얗게 하고 턱을 깎고 볼살을 없애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는 인상 좋고 편안해 보이는 사진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