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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공시가 현실화 계획 폐지”… 대안도 없이 불쑥 던질 일인가

입력 | 2024-03-20 00:00:00

사진은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2023.3.22/뉴스1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로드맵)’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정부가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21번째 민생토론회에서 현실화 계획에 대해 “징벌적 과세” “무리한 계획”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세금 부담을 낮춰 준다는 취지지만, 구체적인 대안 없이 총선 직전에 일단 폐지 방침부터 밝힌 것은 조세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020년 수립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2035년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에 현실화율까지 급하게 올려 보유세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통상 연 3% 정도 오르던 공시가격이 계획 도입 이후 연평균 18%나 상승했다.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높아지는 가격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의 부작용을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시간만 끌어왔다. 현실화율을 로드맵 발표 이전 수준인 69%로 묶어두는 임시방편을 2년 연속으로 이어갔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중 로드맵 수정안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원점 재검토’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다 다시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폐지 방침부터 불쑥 내놨다. 부동산공시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법이 통과되지 못하면 임시방편을 한 해 더 쓰면 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가 세 부담 경감만 강조하고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간과한다는 지적도 있다. 처음에 공시가격 현실화 요구가 나온 것은 시세와 공시가격의 지나친 괴리, 지역·유형·가격에 따른 공시가격 불균형 등으로 과세 형평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은 부동산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나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복지제도의 기준이기 때문에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땜질 처방을 반복할 게 아니라 국민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복지 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교한 중장기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과 지방, 아파트와 단독주택, 고가 주택과 저가 주택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가격 산정의 투명성을 높일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일단 폐지부터 하고 대안은 나중에 찾아보겠다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 접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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