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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 올들어 7배로 급증… 밸류업 정책 효과

입력 | 2024-03-21 03:00:00

주주행동주의 활성화도 한몫
이달 19일까지 4조4197억 발표
금융주 등 주가 상승으로 이어져
일부선 “장기적 경쟁력 약화 우려”




올해 국내 상장사들이 발표한 자사주 소각 규모가 4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아직 1분기(1∼3월)가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지난해 연간 소각 규모에 다가서고 있다. 주주행동주의 활성화와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효과로 국내 상장사들이 앞다퉈 수천억 원대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한 영향이다.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리면 고질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자본금 유출로 인해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등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자사주 소각 규모 1년 새 7.1배로 급증

20일 동아일보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2019년 이후 국내 상장기업의 자사주 소각 추이를 조사한 결과 올 들어 19일까지 4조4197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이 발표됐다. 전년 동기(6221억 원) 대비 7.1배로 급증하며 지난해 연간(4조8755억 원) 규모에 근접했다.

투자업계는 지난해부터 행동주의 펀드 등을 중심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2019년 1조231억 원이었던 소각 규모는 2021년 2조5186억 원으로 불어난 뒤 지난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정부가 주주 환원을 독려하면서 기업들도 자사주 소각 규모를 더 늘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7936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고, HD현대건설기계도 HD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한 이후 최초로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KB금융(3200억 원), 하나금융지주(3000억 원), 신한지주(1500억 원), 우리금융지주(1366억 원)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도 수천억 원대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국내 대표적인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인 금융주들이 자사주 소각 결정의 영향으로 연초 대비 주가가 크게 올랐다. 하나금융의 주가가 42.9% 올랐고 KB금융(36.4%), 신한지주(21.5%), 우리금융지주(13.2%)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수익성 지표가 개선되고, 발행 주식이 줄어들면서 주가가 상승한다”며 “자사주가 다시 유통시장 매물로 나오는 오버행 우려가 사라진다는 것도 주가 안정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고 설명했다.

● 과도한 자금 유출로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도

그간 대주주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활용한다는 문제점도 최근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호 주주 확보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맞교환한 규모는 690억 원으로 2022년(1조9520억 원) 대비 96% 이상 줄었다. 상장회사협의회 측은 “최근 주주행동주의 확산과 금융당국의 자기주식 제도 개선 언급 등으로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과도한 자금을 투입할 경우 기업 경쟁력 약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연초 대비 14.7%가량 빠졌다. 자사주 소각만으로 주가가 상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주환원도 중요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중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이나 인수합병(M&A) 등에도 자금이 필요하다”며 “과도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