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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병적 집착에 중병 걸릴 의대 교육 [오늘과 내일/이진영]

입력 | 2024-03-20 23:48:00

3000명 교실에 5058명+유급생들 몰려올 것
1인당 2억~4억 원 교육비는 어디서 나오나



이진영 논설위원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의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40개 의대 중 서울 8개대를 제외한 32개 의대가 7∼151명씩 나눠 받았다. 지역 거점 국립의대 7곳은 입학정원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적정 규모(80∼120명)를 훌쩍 넘는 200명으로 매머드급 의대가 됐다. 최대 수혜 지역은 130% 증원된 충청권이다. 인구 비중은 11%이지만 7개 의대 정원 비중은 19%로 커졌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자녀들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 보내려 힘썼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겠다.

학령인구가 줄어 신입생 모집이 여의치 않은 지방의 대학들로서는 줄서서 들어오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3058명 가르치던 교육과 수련 시설에 5058명을 구겨 넣겠다는 정부 발표에 교육의 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휴학한다는 의대생 1만3700명이 그대로 유급되면 학생 수는 폭증한다. 그런데도 어제 정부 발표 자료에는 늘어난 의대생들을 어떻게 의사로 양성할지, 추가로 드는 재정 규모는 얼마이며 어떻게 조달할지가 빠져 있다. 그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최우선적으로 지원’한다는 다짐뿐이다. 의대 정원만 늘려주면 저절로 의사가 되는 줄 아나.

의대 교수들은 지금 의대 교육도 파행이라고 한다. 강의실이 좁아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고, 병원 실습을 돌 때 직원 동선 방해하는 짐 덩어리 취급을 받는 열악한 의대들이 적지 않다. 기초의학 교수는 수도권 의대에서도 못 구하는 실정이고, 임상 교수들은 집단 사직을 선언했다. 다른 기자재는 몰라도 해부용 시신을 갑자기 어디서 대량으로 구할까. 해부학 실습을 ‘관광 실습’으로 때우고, 수술실 메스 한번 못 잡아본 채 유튜브에서 손기술을 눈으로 익힌 의사가 나올까 걱정이다.

의사 한 명 키워내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든다. 미국 의대는 등록금 의존도가 5%이고 나머지는 기부금과 수련병원 수입으로 충당한다. 한국은 1인당 교육비가 2억∼4억 원, 연간 등록금이 1200만 원이니 6년이면 7200만 원이다. 나머지 1억2800만∼3억2800만 원은 대학병원에서 댄다. 그런데 요즘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이탈 후 환자를 못 받아 하루 6억∼10억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1000억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었다. 병원이 도산 위기인데 의대생 교육에 쓸 돈이 있겠나.

그나마 국립 의대는 정부가 지원하겠지만 지방 사립 의대는 “필요하면 융자를 확대해준다”는 정도이니 증원 발표에 “양날의 칼을 받아 든 심정”이라고 한다. 대학병원은 적자이고 학교법인에도 돈이 없다. 간신히 모집해놓은 신입생들은 의대 가려고 무더기로 휴학할 태세다. 의대 정원 늘기 전에도 집단 휴학으로 등록금 수입이 수십억 원씩 줄었다고 한다. 의대생 교육비까지 더해지면 망하거나 부실 교육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망하는 길을 택하는 학교가 얼마나 될까.

의료 강국 미국은 부실 의대를 철저히 걸러낸다. 2020년 현재 의대 수가 195개인데 건국 이후 2019년까지 363개 의대를 폐교시켰다. 우리도 교육부가 지정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의대를 인증 평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폐교된 사례는 서남대 의대가 유일하다. 결국 투자 계획도 없이 정원만 늘려놓고, 교육의 질도 관리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의대생들과 미래의 환자들이 보게 된다. 한꺼번에 증원하면 안 된다고 그 많은 전문가들이 한사코 말릴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에 2000명’을 병적으로 고집하다가 의대 교육이 중병 들고 국민도 큰 병 들까 걱정할 처지가 됐다. 이 뒷감당을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건가.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