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한 단(1kg) 가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농협유통 대표가 “지난해 생산량 부족으로 대파가 1700원 정도 하는데 (현재) 875원에 판매 중”이라고 설명한 뒤에 나온 평가였다. 4000원대에 구입하던 소비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는 거냐”며 의아해했다. 1000원 정도인 소포장 손질 대파와 헷갈린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윤 대통령이 이날 마트를 방문한 것은 민생경제점검회의에 앞서 현장 물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에게 소개된 875원짜리 대파 한 단은 모든 지원을 끌어모아야 가능했다. 대형마트 권장판매가격 4250원에서 납품단가 지원 2000원, 농협 자체 할인 1000원, 정부 할인(30%) 쿠폰 375원을 반영했다. 생산단가를 낮춘 게 아니어서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가격만 보면 ‘합리적’인 수준이 아니라 파격적이다. 2020년 도매가격이 1000원을 밑돌자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 건진다며 대파밭을 갈아엎었다.
▷이 매장이 대파 한 단을 875원에 팔기 시작한 것은 윤 대통령이 방문한 18일부터였다. 1인당 5단씩 하루 1000단을 한정 판매했다. 이달 11∼13일엔 농림축산식품부 지원 20% 할인 행사라며 2760원에 팔았다. 14일부터 125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가 대통령 방문 당일에는 정부 할인 30%를 반영해 875원으로 내렸다. 원래는 20일까지 사흘 동안만 할인을 진행하려 했지만, ‘대통령 방문 특가’ 논란이 커지자 27일까지로 연장했다.
▷정부는 농축산물 물가를 잡기 위해 납품단가와 할인 지원, 수입 과일 관세 인하 등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돈을 풀어 가격 낮추기만 시도할 순 없다. 농산물 생산 및 유통구조 안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찾은 마트는 다음 주부터 대파를 제외한 대부분 농산물 가격을 인상한다고 한다. 대통령 방문 같은 보여주기식 깜짝 이벤트만으론 물가를 잡을 수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