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제는 본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기 위한 제도다. 지역구 중심인 우리나라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에 비례해 추가로 의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오히려 더 확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가 의미를 가졌던 것은 직능대표를 진출시켜 전문성을 강화하거나 소수자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
국민의미래에서 지체장애인 변호사를 1번에 배정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현 국회에 시각장애인 의원이 비례대표로 진출했기 때문에 추가된다면 청각장애인 등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공평했을 텐데도 현 의원이 다시 이름을 올렸다. 그를 포함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2명이 당선권 후보에 들고 이름마저 생소한 공무원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추천되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천(私薦) 논란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연합에는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열린민주당에서 각각 1명이 추천되고 진보당에서 3명이 추천됐다. 비례대표제가 군소정당의 진출을 수월하게 하는 제도이긴 하지만 극단 세력을 막기 위해 어느 나라나 득표율 봉쇄선을 두고 있으며 우리는 3%의 봉쇄선을 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도 넘지 못할 정당과 야합하는 대가로 극단 세력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게 됐다.
우리나라 비례대표제는 과거 병립형에서도 당 대표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등 권력의 사유물이 되기 쉬웠지만 준연동형에서 위성정당이 난립하면서 최소한의 통제 장치마저 풀린 느낌이다. 준연동형을 폐지하고 병립형으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그 역시 당 대표의 의지에 달려 있다. 직능이나 소수자를 대표한다는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 차라리 지역구를 늘려 유권자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게 낫겠다는 소리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