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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김수자에 빠진 ‘유럽 예술계 큰손’ 케링그룹

입력 | 2024-03-21 03:00:00

파리 피노컬렉션서 40여점 공개
김작가에 전시 기획의 전권 부여해





“역사적인 공간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수자 작가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그룹의 프랑스 파리 피노컬렉션 전시관이 19일(현지 시간) 한국 설치미술가 김수자 작가(67)의 작품 40여 점을 공개했다. 유럽 예술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케링그룹이 피노컬렉션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건 이례적이다.

전시관 측에 따르면 부르스 드 코메르스(증권거래소) 건물에 있는 피노컬렉션은 김 작가에게 전시 기획의 전권을 주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부여했다. 중앙 메인 전시 장소인 ‘로통드(rotonde)’와 24개 쇼케이스, 지하 공간까지 내준 것도 2021년 개관 이래 두 번째로, 아시아 작가에겐 처음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알바니아계 세계적인 미술가 안리 살라였다.

김 작가의 작품들은 20일 개막해 9월 2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에서 소개된다. 해당 전시는 제프 쿤스와 신디 셔먼,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이른바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모두 29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김 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 셈이다.

김수자 작가(오른쪽)가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피노컬렉션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현지 기자 및 전시 관계자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실제로 전시관을 둘러보니 로통드관부터 김 작가의 설치작 ‘호흡’이 관객을 맞았다. 지름 29m 크기의 원형 전시장 바닥 전체에 주로 사각 형태인 거울 418개를 깔아놓은 작품. 거울 바닥은 맑은 호수처럼 돔형 천장의 투명 유리와 19세기 프레스코화를 고스란히 비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 작가는 “로통드 건축구조 자체를 모든 것을 싸고 있는 보따리라 여겼다”며 “두 개의 반구를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 듯 실재하는 공간과 거울이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를 만들려 했다”고 했다. 미술전시관의 원형 공간을 로통드라 부르나, 어원은 19세기 여성이 입던 둥근 망토임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김 작가는 또 “관객들이 거울을 바라보며 반응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대중을 설치예술의 퍼포머(행위자)로도 초대한 셈”이라고 했다.

피노컬렉션을 설립한 피노 회장은 “로통드 전시관에 관한 기존 인식을 뒤집기 위해 거울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며 “방문객에게 단순히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고, 무한한 깊이를 지닌 공간 배치로 주체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이날 전시관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 한국을 대표하는 김 작가의 멋진 작품을 파리에서 만나니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지하 전시공간에선 피노컬렉션 소장품이기도 한 김 작가의 미디어아트 ‘바늘 여인’이 상영된다. 상하이와 델리, 도쿄, 뉴욕 등을 배경으로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16mm 필름 연작 ‘실의 궤적’은 6편 전편이 처음 공개된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