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 옆 오솔길을 달리고 있다. 10년 넘게 사이클을 탄 그는 지난해 초 우연히 산을 달리는 영상을 보고 트레일러닝에 빠졌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마케팅 전문가 김지원 씨(39)는 최근 태국으로 한 달간 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여행을 다녀왔다. 사이클에 빠졌던 2016년에는 유럽에서 석 달 지내면서 피레네와 알프스산맥을 자전거 타고 오르내렸다. 그는 한 가지에 끌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 참가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초 UTMB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제 심장이 뛰는 겁니다. ‘그래 저거야. 나도 달려야지’ 하며 산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포인트를 주는 대회에 출전해 UTMB에 출전할 자격을 갖췄는데 추첨에서 떨어져 못 갔어요. 올해 다시 도전할 겁니다.”
양종구 기자
“산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요. 자연에서 달리면 그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진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는 모든 걱정도 사라져요. 무념무상, 현생으로부터 자유를 찾죠. 또 사이클은 속도가 빠르다 보니까 풍경을 즐기기 쉽지 않은데 트레일러닝은 산, 나무, 풀, 바위 등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아요.”
김 씨는 원래 사이클 마니아였다. 그는 “10여 년 전이었다. 미니벨로를 타고 한강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핸들이 밑으로 굽어진 자전거를 타고 저를 획 지나쳐 갔다. ‘어 뭔데 이렇게 빠르지’ 하고 알아봤더니 사이클이더라. 그래서 바로 사서 타고 다녔다”고 했다. 김 씨는 주 3회 이상 탔고 주말엔 100km 이상 질주했다. 그리고 한 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거리 사이클대회 그란폰도에 출전할 기회를 잡았다. 2017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라토나 돌로미티 138km를 완주했다. 한국 여성 최초 완주였다. 그는 2022년까지 이 대회에 두 번 더 출전했다. 그는 “유럽 알프스 등에서 3개월 있으면서 사이클을 타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유럽에서 힘들어하는지 알게 됐다. 유럽은 해발 2000∼3000m 고지대에서 오르막이 기본 10km가 넘었다. 그런 곳에서 타는 사람들은 정말 달랐다. 마라토나 돌로미티 대회는 상승고도만 4300m다”라고 했다.
김 씨는 2019년 대회 출전을 준비하며 사이클을 타다 사고를 당한 뒤부턴 대회 출전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앞니도 깨지고 얼굴이 거의 망가졌었다.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대회 출전보다는 그냥 즐기면서 타고 있다”고 했다. 산을 달리면서도 사이클을 타긴 하지만 이제 트레일러닝이 ‘최애 운동’이 됐다.
“이런 것 있죠. ‘산 1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직접 해보면 되잖아요. 고통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와요. 완주하면 자신감도 치솟고요. 고통은 몇 시간이지만 완주의 기쁨은 몇 년, 혹은 평생에 걸쳐 유지할 수 있죠.”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